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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41): 지도자의 힘이 맞닿은 곳이 어디인가?
지도자의 힘이 맞닿은 위치를 말하기 전에 나는 흔한 속담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늘 간데 실 간다!’ 반드시 앞장서야 할 지도자라면 바늘과 실의 선후관계와 그들 각자의 활동에 대해서 별로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바늘이 가는 곳이나 그 방향을 무조건 따라가야 하는 실의 모든 행로는 바늘이 잘못 갔을 때 지나온 실의 행적이 모두 무용지물이 돼 모두 뜯겨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자가 바로 바늘의 위치를 점한 지도자이다. 고로 ‘나는 바늘의 위치를 포기하고 실이 돼 그 자리를 지킬 거야’라고 말해도 이미 지도자의 위치를 벗어났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바늘이 자기 위치를 벗어나도 자신의 귀에 끼워서 끌고 다녔던 하얀 색깔의 실이든 수를 놓던 형형 색깔의 실이든 그 어느 것으로 바뀔 수가 없다. 바늘이 마음대로 자기 맡은 일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바늘의 신분을 스스로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변수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바늘귀에 실어 끼어주는 눈이 어두운 할머니의 존재이다. 그 할머니가 손자의 바지를 꿰매주려고 바늘귀에 실을 끼어 바늘로 하여금 자신의 손놀림에 따라오도록 바라고 있기 때문에 바늘이 마음대로 제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어느 지도자든 반드시 그를 좌우지하는 또 다른 지도자가 있기 때문이다. 바늘이 바늘의 임무를 스스로 박차고 나갈 수 없는 것처럼 특히 복음의 지도자는 자신의 위치를 마음대로 벗어날 수가 없다. 부활의 주님으로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바울이 자신이 짊어진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에도 자신에게 부여된 지도자의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것과 같다.
그렇다. 지도자란 위치에 있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그 자리를 쉽게 버리고 떠날 수 없는 것은 실을 떠난 바늘의 운명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만약 할머니의 손에 들려있던 바늘이 두 동강이 났을 때 현대의 조침문을 읊조릴 분은 바로 할머니이다. 옛 조침문의 저자와는 다르지만, 현대의 바늘의 주인인 할머니가 바늘이 두 동강 났을 때 그 아픔을 알고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지도자가 꺾일 때 하나님께서 그 아픔을 아신다. 때로 두 동강난 바늘의 약함처럼 지도자의 약함 역시 자신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더더욱 실낱처럼 약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위치라는 사실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내 아내는 가끔 고등학교 때 외운 조침문을 혼자서 읊조릴 때가 있다. 나 역시 국어 고어(古語) 시간에 배워 귀에 익숙한 탓인지 아내의 읊조리는 조침문이 듣기 좋다. ‘오호통재라’ ‘오호애재라’가 슬픈 노랫가락처럼 들리지만, ‘자끈둥 부러지니...’, ‘두 동강이 났구나.’란 구절을 들으면 동강난 바늘의 운명, 지도자의 실패는 바늘과 실의 실패이니 정녕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성서엔 한 종족을 대표해서 전쟁터에 나온 챔피언이 등장한다. 챔피언은 다른 종족 혹은 다른 나라와 전쟁 시에 자국의 운명을 어깨에 얹고 적의 챔피언과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하면 자국의 승리이고, 대신 그 개인이 실패하면 자국의 실패로 돌아오기에 죽느냐 사느냐의 한 판 승부이다.
블레셋의 챔피언 골리앗이 전선에 앞장서서 이스라엘 전체를 조롱하고 있을 때 그 당시 이스라엘엔 챔피언이 없었다. 누구도 나설 수 없는 상황에 목동 다윗이 골리앗을 패배시켜 이스라엘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나는 다윗에게서 올바른 바늘의 진로, 곧 앞장선 지도자의 위치와 힘을 발견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붙들고 앞으로 전진 한 다윗이야말로 참된 지도자였다. 아무리 챔피언이라도 바늘처럼 두 동강이 날 수가 있다. 형제들로부터 멸시를 받던 어린 목동 다윗, 왕 사울의 검과 그의 갑옷조차 보호막이 될 수 없었던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앞세우고 적과 대결해서 승리했다.
다윗의 바늘, 그의 지도력은 정확하게 골리앗의 이마를 꿰뚫었다. 하지만, 골리앗은 두 동강난 바늘이었고, 그를 따르던 병사들은 한 순간에 오합지졸로 엉킨 실타래에 불과했다. 진정 다윗은 자신의 그 힘만을 여기저기 쏟아 붓고 다니던 사사 삼손과도 전혀 달랐다. 삼손은 동강 난 바늘이었고, 그 귀에 끼인 실은 헝클어진 실타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