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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43): 작고 약한 것과 크고 강한 것의 차이 


작은 것과 큰 것 사이, 혹은 약자와 강자 사이의 경쟁 속에서, 혹은 불가피하게 섞여서 살아가는 세상에서 과연 누가 쉽게 이득을 취하고 또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가? 대다수가 큰 것 혹은 강자의 승리를 바라진 않으면서도 그들의 승리를 당연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상식이다. 하지만, 작은 자 혹은 약자가 승리를 놓쳤다고 해도 그 약한 소수도 역시 다수라는 강자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가 있다는 사실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지금 내 오른 손 가운데 손가락 끝에 내 부주의로 인하여 아주 작은 상처 하나가 생겼다. 그 상처는 내 온 몸에 비해선 너무나 작지만, 내 몸과 마음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아무리 상처가 작다고 해도 크게 아프든 그렇지 않든 그대로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생명체의 어느 한 부분이 겪는 아픔이지만, 그것은 결국 온 몸의 아픔이 돼 온몸에 영향을 끼치니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당장 컴퓨터 앞에 앉아 글쓰기가 쉽지 않다. 내 손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몇 십년간 계속하고 있는 글쓰기인데, 지금은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서 글을 써야 하니 손가락 하나에 얹어진 작은 상처가 나름대로의 나의 큰일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하기야 나의 작은 아픔이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고 해도 함께 하는 생명체 안에선 알게 모르게, 크든 적든 영향을 줄 수 있고, 영향을 받는 대상이 있게 마련이다. 가장 가까운 내 아내에게 영향을 주고 있고, 내가 손봐주어야 할 일을 거들어줄 수가 없다. 아무리 조그마한 것이라도 누구에게 알려지면, 나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선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이처럼 조그마한 일을 통해서도 우리가 직간접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데서 한 생명체 안에서의 서로 다른 지체라는 한 몸 됨을 인정하면서 아픔 역시 은혜가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세상일에는 아무리 작고 약해도 큰 것이나 강한 것에 도전해서 이겨보려는 약자의 뚝심 같은 것이 있어 때론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하지만, 자기 개인의 작은 불만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일이 너무 다반사라서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게 세상살이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정상이고, 당연한 권리라 생각하고 거친 행동으로 반항 할 때가 너무나도 많은 세상이고, 단체가 크든 작든 어디서든 약자 혹은 소수자에게 주어진 특권의 명패인 양 머리에 띠를 두르고 다반사로, 혹은 불법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소위 사회에서 약자라는 사람들로 상처 받는 사람들도 생겨난다는 걸 소수자 혹은 약자들도 겸손하게 인정하고 조심스럽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도 오랫동안 한국 전쟁의 피해자로 약자의 삶을 살아왔지만, 그런 약자라고 해서 그것이 특권이 아니라는 걸 기꺼이 인정하고 살아왔다


그가 누구이든 자신이 작고 힘이 약하다는 것을 내세워 자신의 불만표출을 정당화하는 행위는 긍휼의 요구와는 전혀 다른 오만한 처신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맞추지 않고, 보다 큰 목소리로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 역시 아무리 약자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자기 자신이나 어느 한 사람의 불만을 달래주고 채워주는 것보다는 전체에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약자와 소수를 대변한 힘없는 약자와 소수 중의 한 사람, 적어도 함께 사형을 받는 두 강도 사이에서 형언키 어려운 고통 가운데서 용서와 사랑을 토로하시고 죽으셨다. 누가 진정 약자로서 혹은 작은 자로서 다른 사람들이나 지도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그리고 자신이 다른 이의 도움을 받는 게 진심이라면 과장된 목소리로 다른 모두에게 영향을 주려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긍휼이 필요한 약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해야 한다. 진정 긍휼을 바라는 자라면, ‘제가 아프니 도와주세요!’라는 작은 소리이면 족하다. 자신의 마땅한 권리 행사인 양 하나님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건 약자의 오만일 뿐, 긍휼을 바라는 마음일 수 없다. 긍휼은 낮은 자의 자세만이 유효할 뿐, 목소리를 높이는 권리행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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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2024 VBS (여름성경학교) 등록 안내 관리자 2024.03.29
Notice 그레이스교회 제3대 담임목사 청빙공고 관리자 2023.10.13
Notice 온라인 헌금 안내 관리자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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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Andrew의 미국시민권 포기와 한국으로 이감문제* (71) 김한철 2019.12.28
729 *교도소 철창속을 찾아간 유 정 옥 사모* (70) 김한철 201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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