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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69): 가난에 관한 가룟 유다의 무지(無知) -가난의 참된 정의(定義)-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어떤 분으로 소개되어야 그분의 정체성을 바르게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교회에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정말 나름대로 많은 다른 대답이 나올 것 같다. 물론 요한복음 12:1-7절까지를 제시하고 그 안에서 대답을 찾아보라고 말하면, 대답이 좁혀질 수는 있겠지만, 본문에 맞는 바른 대답은 그리 쉽게 나오지 않을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혹시 가룟 유다의 무지(無知)’라는 글 제목을 대답의 근거로 삼는다고 해도 주님의 정체성에 대해선 정답이 나오기 쉽지 않다.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렇게 물을 사람들이 있을 터. 우리는 대개 주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권능에 초점을 맞추어 그분을 생각하는 버릇에 길들여져 있다. 주님을 높이는 것만이 그분을 존경하고 경배하는 것이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바로 그분의 높고 위대하심만을 믿기에 그분의 낮아지심과 가난하심을 잊게 된다. 주님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선 우리는 살리신 복음이다.’라는 사실이다.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살리신 복음이 되셨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자


바울이 빌립보에 보낸 편지 가운데 이런 말을 먼저 묵상해 보아야 한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2:5).을 시작해서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으로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2:6-8).’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살리신 복음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복음으로서의 그분의 정체성의 알파와 오메가는 곧 자신을 철저히 비우신 가난이고, 종의 모습이고, 바로 우리 죄인의 모습을 지닌 사람과 같이 되신 것이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 자체가 자신을 낮추심이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이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한 종이었다고 못 박아 강조한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에서 종의 자리로 내려앉으신 신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그 모양대로지음 받은 걸작이었지만, 우리가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종이 된 우리를 구하시려고 주님이 친히 낮아지시고, 가난한 자, 약한 자 되시고, 종이 되셔서 우리의 약함과 가난과 온갖 수치와 멸시를 한 몸에 짊어지셨다. 우리의 가난을 짊어지시려고 우리보다 훨씬 더 낮은 자, 더 가난한 자가 되셨다


베다니에서 마리아가 값진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그 광경을 옆에서 보던 가룟 유다가 항류를 ‘3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가난 구제라는 도덕률을 앞세워 마리아를 비난했다. 만약 주님께서 유다의 말에 맞장구를 치시고, 그를 칭찬하셨더라면, 아마도 주님께선 더더욱 도덕군자로 추앙을 받을 수도 있으셨겠지만, 우리 주님의 가난의 의미는 실종돼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소위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주님께서 가난한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일부로 가난이나 약함을 짊어지신 분이 아니라, 마치 재물의 부와 권력을 안겨줄 능력의 주님을 따르고 있었을 뿐이다. 주님은 가난한 자 중의 가난한 분이셨지만, 제자들은 주님을 통해 부와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는 꿈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따랐다


가난은 재물의 유무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부자 되려는 탐욕은 더 이상 가난한 자가 아니다. 가난한 자가 될 수 없다. 가난한 자가 되지 않으면 가난한 자들의 대표자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의 혜택을 받아 누릴 수가 없다. 세상에서도 부자가 가난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가난만이 가난을 해결해줄 수가 있다. 우리 주님의 가난만이 우리의 약함이나 가난을 해결해주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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