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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70): 방글라데시에서 뒤늦게 도착한 성탄 카드 한 장
정말 뜻밖의 기쁨이다. 방글라데시에서 편지가 오다니? 우리에겐 전혀 믿기지 않는 사건이다. 우리 아들내외가 처음에 태국과 네팔에서 각각 사역하다가 미국에 들어와 결혼한 후에 함께 방글라데시에 들어가 위클리프 성서번역 선교 사역을 개척한 지 20년이 돼가는 시점에 처음으로 받은 편지가 금년 성탄 카드이다. 지금처럼 이메일조차 소통할 수 없었다면, 그들의 삶을 전혀 알 길이 없었지만, 이메일 소통으로 지난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큰 어려움 없이 견뎌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20년 만에 처음으로 성탄 카드가 날아든 것이다. 그들 부부의 이름으로 보내온 것이지만, 모두 며느리가 손수 만든 카드에 며느리가 쓴 편지라는 걸 알 수가 있다. 빨간 색종이에 진초록의 전나무 성탄 트리를 오려붙였고, 크고 작은 별들과 둥근 모양들을 그 나무 그림에 오려 붙여 꾸민 단출하지만 정성이 깃든 예쁜 성탄 카드이다. 편지 겉봉도 손수 만든 것이다. 아들내외가 살고 있는 것은 방글라데시 남쪽 시골 마을이라서 카드를 파는 상점도 없으니 손수 만들어 보낼 수밖에 없었을 터. 겉봉엔 'Air Mail'이라 붉은 글씨로 눌러 썼지만, 커다란 동일한 우표 8장이 앞뒤로 네 장씩 붙여 있어서 이런 카드 한 장도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오는데 꽤나 돈이 들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그 편지가 20여일 만에 우리 손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젠 제법 그 나라의 사정도 조금은 달라진 것이 아닐까란 기대도 갖게 되었다.
빨간 카드 안 쪽엔 희지도 누렇지도 않은 방글라데시를 닮은 조그마한 종이쪽지에 며느리의 정성이 가득한 메시지가 꾹꾹 눌러서 얹혀 있다. 며느리는 우리를 내외를 항상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며느리는 네덜란드 계통의 이민 3세이지만, 그가 칭한 우리의 호칭은 시집 온 첫 날부터 항상 ‘어머님, 아버님’이다. 어디서 그걸 배웠는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우리로서는 언제나 듣기 좋은 호칭이다.
그의 편지 첫 머리는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언제나 저희의 사랑을 보냅니다. 이런 축제 기간 중엔 확실히 더 뵙고 싶긴 하지만, 몇 개월 후면 서로 만나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립니다. 저희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게 얼마간은 희생일 수도 있지만, 두 분께서도 저희들이 이곳에 오겠다는 결정에 축복해주시면서 겪으신 희생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희 모두가 다 함께 같은 하나님을 알고 섬길 수 있는 것에 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크리스마스에 더 많은 사랑으로, 애미와 승일 드림
성탄 카드 속엔 위와 같은 짤막한 내용이 담겨 있다. 나는 며느리의 편지 속에 들어 있는 희생이라는 말의 참뜻이 과연 무어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그의 입을 통해서 처음 듣는 말이기에 의아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에게서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말이다. 하나님의 일 자체를 그들의 희생이라 여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은 벌써 50을 넘어섰고, 며느리도 내년이면 49세가 되는 터이고,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기 위해서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선교지로 나갔고, 자녀를 가지 않기로 결정하고 결혼도 했기에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그들에게도 그 점이 조금은 아쉬운 희생일 수도 있겠고, 우리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손자를 안아 보지 못하게 한 것이 혹시 부모들도 겪어야 하는 희생이라 여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결혼을 했기 때문에 오늘까지 어려운 지역에서 서로 도우며 위로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돼 우리 부부는 늘 며느리에게 감사하고 있다. 우리 아들은 성서번역 컨설턴트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고, 며느리는 성서 이야기 사역의 책임자로 일하면서도 남편도 도와야 하니 그는 이중삼중으로 바쁘다는 걸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늘 우리 며느리가 고맙고, 예쁘다. 내년 4월이면 서로 만나볼 수 있다는 기쁨으로 그들에게 답장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