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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85): 마음이 강퍅해진다는 말의 의미
간이나 심장, 심지어 머리까지 굳어진다는 말은 흔히 듣고 산다. 신체의 어느 부분이든 굳어지는 건 두려운 일이다. 굳어지면서 서서히 그 부분이 작동을 멈추면서 결국 죽음을 맞기 때문일 터. 그러나 마음이 굳어지면 어찌 될까? 혹시 신체의 어느 부분이 굳어지는 건 중단시키거나 고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이 굳어지는 걸 의사의 손길로는 고치기가 그리 쉽지 않을 터. 마음은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고, 마음이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정확히 지목해 말할 수 없거니와 사람마다 그 마음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과학적 통계로 말하기 곤란하다.
아무튼 우리의 생각도 마음에 있는 것 같고, 우리의 꿈도 마음에 있는 것 같고, 좋고 나쁜 것이 동일하게 각자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 같지만, 마음이 어디에 자리를 정하고 안주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 ‘내 마음 나도 몰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허공에 떠다니는 것들을 우리의 마음이 끌어당겨 자기 생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마음을 심장(heart)과 연결해서 말하는 표현들이 많다. 요16:33엔 '담대하라‘의 영문 번역을 'take heart(NIV, ESV)'로 표현하고 있다. ’마음을 다잡이 담대 하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우리 몸의 중심 기관인 심장을 단단히 붙들고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 각자의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 의사는 가장 먼저 심장에 청진기를 대고 이상 여부를 관찰하지만, 그 때 환자의 생각은 그 심장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모든 기능이 하나 되어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기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서 두 손으로 자기 머리를 감싸고 골몰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마음은 머리에서 생겨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음식 맛을 볼 때에 기본적으로 입의 혀를 사용한다. 물론 먼저 눈으로 보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걸 확인하듯 입보다는 눈이 먼저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음의 생각으로 그 맛이 좋다 혹은 좋지 않다는 걸 판단한다. 모든 것을 종합해 판단하는 것이 마음이니 아무래도 마음은 머리에 있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모든 가치관의 판단을 통해 마음을 정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마음은 몸통이 아니라, 머리의 소산인 것 같아 보인다. 우리가 밥을 먹는 것은 입을 통하지만, 무얼 먹을지는 머리에서 생각한다. 점심 한 끼를 먹기 위해서도 먼저 마음에서 정하고 식당을 찾든 집으로 가든 발을 옮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시려고 바로 왕의 마음을 계속 강퍅하게 하셨다. 이집트에 내려진 재앙 하나하나는 그들의 마음을 강퍅케 하신 결과이다. 그러나 바로의 부드러운 마음 밭을 일부로 돌 자갈밭으로 만드셨다는 건 아니다. 선한 마음을 악하게 만들어 그를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백성을 그의 악한 마음으로 붙잡아 계속해서 노예로 만들려는 그의 악한 마음을 드러내서 심판하시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그의 악한 손아귀에서 빼내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선한 마음을 악하게 만드시거나 부드러운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지 않으신다. 누구든 하나님을 대적하면 그 속마음에서 악하고 강한 마음이 얼마든지 생산돼 나오게 돼 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곧 생명이다. 그 바른 관계가 깨지는 것이 죽음이고, 영적으로 죽었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속사람의 악이고, 그 악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서 계속해서 더욱 강퍅해진다. 하나님께서 선하시니 그 선을 떠나면 달리 악을 저지르지 않아도 명백한 악이다. 우리 속에 있는 죄에서 죄가 나오고, 악에서 악이 나온다. 우리 속에 있는 악은 쉽사리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강퍅해진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강퍅함을 드러내신 것일 뿐, 일부로 그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시지 않으셨다. 바로의 강퍅한 행위는 바로 왕 그 자신의 악행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악행을 징계하시고, 결국 하나님의 백성을 그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셨다. 바로는 원래 마음이 악하고 스스로 하나님 노릇하려는 강퍅한 자아(自我)의 소유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