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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91): 당신의 선악과, 오늘의 그 맛이 어떤가요?(1)
집안의 음식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이는 그 집안의 안주인이요, 자녀들의 엄마가 아닐까 싶다. 물론 웃어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집안이라면, 그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지 않더라도 집안의 음식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위치의 사람일 수도 있다. 물론 식당의 입맛을 좌우하는 이는 주인이 아니라, 주방장일 수 있지만, 만약 주방장이 음식점의 주인을 겸한 경우라면, 재료 구입도 그의 몫이니 음식 맛을 좌우하는데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는 없다 할 것이다. 재료가 싱싱해야 음식의 맛도 제대로 울어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인류가 에덴에서 삶을 시작한 이래 어제도 오늘도, 아니 내일까지도 변함없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의 맛은 제 눈에 안경이듯이 각자 자신이 맛보아 ‘좋다.’ ‘안 좋다.’를 자기 마음먹은 대로 판단해서 신난 듯 기뻐하고, 만족해하는 버릇은 동서고금 언제어디서나 동일하다. 다른 이에게 어떤 맛일지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니 선악과의 맛은 단지 천차만별 정도가 아니라, 모든 인류 개개인의 입맛대로이니 모두가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 자신의 입맛대로 스스로 판단하니 그 맛이 모두 다르다는 뜻이다. 이처럼 각자의 입맛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의 입맛과는 별개일 수 있지만, 자신의 입맛대로 다른 사람의 입맛까지 좌우지하며 자신의 그 맛을 유일한 것처럼 남들에게 강권하며 영향을 끼치려는 행위가 어찌 가능할까?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후에 하나님께서 “보아라, 이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창3:22).”고 선언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선악의 지식을 불순종으로 습득했기 때문에 인간이면 누구나 그 금지된 선악의 맛에 길들여져 있다. 인간이 불법으로 취득한 선악의 맛은 하나님의 그 맛과는 전혀 다르지만, 각자의 자기 입맛으로 하나님의 유일한 맛을 흉내 내며 마치 자신의 맛이 유일하고 진짜인 양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 만약 누가 그의 입맛에 맞는 선악과의 맛을 기꺼이 받아들여 그 맛에 동참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의 입맛은 항상 ‘좋지 않다’는 악에 속한 것으로 내쳐지기 십상이다. 그런 행위가 소위 개개인의 자기 입맛의 절대화이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의 입맛에 맞춰지기를 강요당한다. 그렇다. 쉽게 말해서 ‘내가 좋다.’ 혹은 ‘내가 싫다.’라고 말하는 그의 선악 판단을 무조건 그대로 따르라는 요구이다.
뭐니 뭐니 해도, 선악의 주인 행세만큼 무서운 죄악은 없다. 만약 선악의 결정권자가 사람이라니 그 앞에서 떨지 않을 자 누구인가? 그가 곧 법이란 뜻이다. 자기 입맛 외엔 모든 다른 맛을 불법화시킬 수 있는 법 위에 군림하는 자이다. 자신이 선과 악을 결정할 수 있는 자라면, 그는 모든 선과 악에서 제외돼 무소불위의 자리에 앉아 있는 스스로 신(god) 의 경지에 이른 자이다.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첫 사람에게 주신 가장 중요하고 유일의 명령이 바로 ‘너희는 자신들의 입맛대로 살지 말라!’였다는 사실을 어찌 생각하는가? 그것이 왜 각자의 목숨이 달린 하나님의 절대명령이었을까? 그 명령이 어찌 집에서든, 혹은 어느 식당에서든 자기가 주문한대로가 아니라, 그저 주는 대로 먹으라는 명령이었겠는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엔 각 개인의 입맛의 절대화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아마도 최고 권력자인 왕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다.
에덴의 첫 주민 아담과 하와 부부가 하나님께서 죽음으로 금지시킨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후에 그들의 몸에 나뭇잎을 걸쳐 겉모습은 달라졌지만, 그들의 입맛엔 변함이 없으니 잘못이 없다는 핑계였다. 다른 이의 입맛이 자신들과 다른 것이 문제라는 핑계였다. 여자는 뱀을, 남자는 하나님과 여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자기 입맛이 아니라, 다른 이의 입맛을 핑계했다. 그래도 하나님만의 선악과의 입맛을 자신들이 취득했으니 항상 자기 입맛대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 맛은 단지 두 가지이다. 짜다 혹은 싱겁다거나 달 거나 신 것이 아니라, 단지 ‘좋다’, ‘안 좋다’, 두 가지 맛뿐이다. 하나님만의 선악의 맛을 인간이 좌우지 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