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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94):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생명의 산수풀이를 헤아리며-
사람은 어릴 적부터 손가락으로 수(數)를 헤아리는 기본적인 산수를 익히고 나면 하나보다는 둘, 혹은 셋, 아니 그 이상의 큰 숫자를 헤아릴 수 있다거나 혹은 간단히 말해서 더하기 혹은 곱하기 셈법을 배우고 나면 단수보다는 많은 수의 복수를 좋아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어린아이가 손가락으로 숫자를 많이 헤아리면 부모는 영리한 아이처럼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숫자 하나 다음엔 곧바로 둘, 셋이 이어지기 때문에 하나의 가치가 뒤에 이어지는 많은 숫자에 비해서 그 가치가 작아진다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인지 하나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는 항상 복수에 밀리고 묻히면서 당연히 하나는 적은 수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 진정 당연한 것인지 먼저 의심부터 가져야 한다.
특히 정치판에선 하나는 많은 수에 보태기를 위한 기본적인 수일 뿐, 별로 중요시되지는 않는 단수일 뿐이다. 어떻게든 한 표라도 더 많은데 초점을 두고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개 숙여 지원을 바라긴 하지만, ‘이 사람이 과연 내 편이 될 수 있나, 없나’를 따질 뿐, 실제로 한 사람에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데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선 모든 피조물을 ‘그 종류대로’ 그리고 ‘그 모양대로’ 지으시고, 다른 것들과는 서로 철저히 차별화를 이루셔서 모든 만물을 모두 하나하나 각각 독립된 단수로 지으셨다. 사람 역시 한 사람 한 사람이 독특하고 유일한 하나가 되기를 바라셔서 단수로 지으셨다.
창조주 하나님께선 왜 하나하나 따로 각각 다르게 독립적으로 지으셨을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보태져서 많은 수의 복수가 되기보다는 하나하나로 홀로 서서 독립된 하나가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각자가 홀로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하나 될 수 없다. 만약 나와 똑 같은 나(I)가 또 한 사람이 존재한다면, 나는 복수가 되기는 하지만, 결국 나는 사라져버린다. ‘나’의 반대말은 ‘너’가 아니라, ‘나’가 복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God)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성서 속에 많이 등장하는 신들, 곧 영어 표현은 gods이다. 하나님이 복수가 된다고 좋아하지 말라. 오직 한 분 하나님이 복수가 되면 하나님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우상이 들어선다. 그래서 사람들이 만든 신은 언제나 복수인 gods이고, 그것이 곧 우상이다.
오직 한 분 하나님께선 세분이 각각의 인격체로 다르게 존재하시지만, 세분이 한 분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한 분의 존재 방식이 곧 삼위일체이다. 1+1+1=1라는 산수를 누가 쉽게 받아들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산수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일단 인간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걸 앞세워 부정하는 것이 인간의 올바른 이성적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과 그 모양대로 우리를 창조하셨으니 우리 속에서 하나님을 형상을 찾아보는 것이 쉽지 않겠는가? 아담과 하와 부부가 남녀로 각각 다르지만, 다르기에 하나 되어 부부가 되었고(1+1=1), 아들이 태어나 한 가정이 되었다(1+1+1=1). 인류의 첫 가정은 곧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곧 세분이 각각 독립적이고 완전히 다른 인격체이지만, 하나님 한 분으로 동일하기에 세분이 하나 된 삼위일체이시듯이 첫 가정이 하나님의 형상과 그 모양을 닮았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다르고, 아들로서 다르고, 성령으로 각각 다른 인격체이시다. 아버지가 아들이 될 수 없고, 아들이 아버지가 될 수 없듯이 성령이 아버지나 아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세분이 하나님으로 동일하지만, 세분이 한 분 하나님이라고 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란 인격적 신분이 마음대로 뒤바뀔 수는 없다. 한 가정에서의 생명의 선후는 결코 뒤바뀔 수는 없다. 아버지+아들+성령=하나님, 각각 다른 세분의 인격체가 하나님 한 분으로 동일하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각각 독립된 인격체로 각각 다른 신분이면서 하나님으로 한 분이시기에 삼위일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