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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211): 혈통 표시인 성(姓) 없는 형제사이가 근본이다!(2)
우리 크리스천들이 서로 형제관계라는 건 그저 교회에 모인 사람들끼리 친숙해진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오래 사귀었기에 남다른 형제애가 생겨나서 의형제를 맺듯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근거해 구원을 받은 자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피보다 진한 영적 관계를 기준으로 말하는 진실이다. 혈육 간의 형제는 시간 속에서 끊어지지만, 구원으로 맺어진 영적형제는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한 가정의 모든 식구들조차 하나님의 구원의 가정이라면 모두가 형제가 돼 있다는 그 진실을 하나님 앞에서 늘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이 상식화 돼 있다. 한 가정의 모든 식구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모두 형제라는 걸 인정하더라도 육신의 죽음으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지만, 영적관계는 영원히 단절될 수 없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보장하시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모든 식구가 하나님의 자녀로 모두 형제라는 사실을 존귀하게 여기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세상 밖에선 이상타 여겨질 수 있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모든 믿는 자들 속에선 진정 그 진실이 상식으로 통해야 한다.
노인은 오래 살아온 백발이 자랑스러울 수 있지만, 대신 청년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밝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비전을 마음껏 펼쳐서 가고 오는 모든 세대의 가교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랑스러운 것이다. 우리 육체에 시간이 얹어진 나이의 표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선 비교상대로 나누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육체의 나이로는 차이가 많은 것 같지만, 현재의 나이가 100세라고 해도 므두셀라의 나이 969세에 비하면 그는 거의 10배나 더 살아야 한다. 시간 속에서 덧붙여진 나이 차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나이 많은 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 가장 나이어린 손자손녀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나이 차이가 많은 것이 교제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친구(벗)라고 호칭하셨다(대하20:7).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도 ‘나의 친구들이라(요15:14)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인간 사회, 특히 한국 사회에선 ’군대에 하루라도 빨리 들어간 걸 가지고 선후배를 나누고, 학교에 입학 햇수가 1,2년 차이의 선후배라고 해서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처럼 취급 하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형제보다 더 가까운 친구로 부르신 그 사실, 가히 혁명적인 그 호칭문화의 진실을 왜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그만큼 우리와 가까이 현존하시는 분이시라는 진실을 스스로 선포하신 것인데 우리는 쉽게 상식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무시하고 거부한다. 우리의 문화는 나이가 많고 적음에 너무나 민감하게 차별을 두는 편이다. 나이 많은 사람과 나이 어린 사람의 차이를 우선 근본부터 헤아리지 못한다. 그저 상하관계로 고착화시켜놓고 대하기에 우선 상호존중의 인격적인 교제가 쉽지 않게 돼 있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선 성을 빼고 이름만을 쉽게 부르면서도 나이든 사람의 이름에서 성(姓)을 빼면 마치 큰일이 난 듯 당연히 상식에 어긋난 못된 사람으로 취급해버린다. 하지만 특히 이런 문화를 고집하는 사람들의 사고의 틀을 고칠 힘은 누구에게도 없다. 다만 항상 하나님의 뜻에 빗대어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욱하는 반응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생각을 안타까워할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재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는 실제로는 언제부터 성을 쓰게 되었는지, 그 성씨의 조상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를 알지 못한다. 다만 성을 부르려고 하면서도 무언가 빠진 것이 있는 것처럼 성(姓)에다 다른 존칭을 붙이지 않으면 부를 수가 없고 대답도 들을 수 없다. 하다못해 김씨, 이씨, 박씨, 선생님, 혹은 아저씨라도 붙여 불러야 한다. 대통령이란 최고의 존칭에도 다시 ‘-님’을 붙여 ‘대통령님’이라 불러야 하니 ‘-님’자가 대통령보다 높은 존칭인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