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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238): 그리스도의 부활이 왜 누구에게 영광인가?(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과연 무엇을 말씀코자 하신 것인지, 또 그분의 부활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찬양과 영광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다 같이 살펴보고 싶다. 하나님의 손으로 친히 지음 받은 인간이 낙원에서 어느 순간 저질은 불순종의 죄로 인해 심하게 상처를 받으신 분은 그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선 온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끝으로 사람을 지으신 다음에 오직 한 가지만을 금하셨는데, 그 한 가지 금하신 금령이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모두 좋은 존귀한 명령인데 사람이 단칼에 불순종으로 거절해버렸다.
아담을 지으신 다음에 인간 아담은 다시 지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지음 받은 존재는 무엇이나 똑같은 존재로 다시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이기 때문이다. 모든 하나하나가 각각 다르고 완전하기 때문에 또 다른 아담을 지으실 수가 없다는 뜻이다. 때문에 아담을 잃으신 하나님께서 크게 상처를 입으셨다는 말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위로하거나 설명할 길이 없다. 감히 자녀를 잃은 육신의 부모의 마음에도 비교할 수가 없다.
실제로 하나님께선 단순히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을 잃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을 단 한 번에 몽땅 잃으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지가 그 주인을 잃어버린 채 끈 떨어진 연처럼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것과도 같은 너무나도 크고 끔직한 초대형 사건이었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거룩하심, 그 영광을 한 순간에 송두리째 잃으신 엄청난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지으신 사람이 한 순간에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죽어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로 인하여 펼치실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거룩하신 뜻이 바로 한 순간에 물안개처럼 사라져버렸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마지막 날에 사람을 지으시되 ‘하나님의 형상과 그 모양대로’ 지으신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이 사라져버렸다는 현실 앞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더구나 모든 것들을 관리하고 가꾸어줄 그 한 사람을 잃어버린 온 우주만물이 어찌 될지 그들의 운명을 가늠하지 못할 만큼 실로 몸서리처질 일이었다.
인간 아담이 죄를 범한 후 동시에 하나님과 결별하고 그분의 품을 떠나게 되었을 때, 이미 땅마저 저주를 받았다.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창3:17).’ 창조의 마지막 날에 ‘심히 좋다.’고 선언하신 하나님께서 땅의 저주를 말씀하신 건 몸소 지으신 땅을 통해 모든 생물들과 물질을 통해 펼치실 하나님의 뜻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말았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지만, 누가 뭐래도 창조 중의 창조, 곧 창조의 꽃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 스스로의 형상과 그 모양대로 지으신 건 오직 사람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창조의 꽃인 인간의 타락은 곧 모든 피조물들의 의미 없음으로 이어졌다.
인간은 온 우주만물에게조차 ‘창조의 꽃’이라는 칭송을 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던 존재였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인간이 타락하자 곧바로 동물보다 못한 존재가 돼버린 비극을 누가 어떻게 회복시킬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 타락으로부터의 회복이고, 죽은 자로부터의 새로운 생명회복이다. 하나님께서 만약 재창조라는 카드를 쓰셨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나 모든 만물에게 결코 비극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첫 창조가 완전했기에 재창조 역시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창조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만약 달리 지으셨다면, 첫 창조가 실수였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에 실수의 실수도 계속 이어졌을 것이고, 하나님의 손에서 진흙이 마를 날이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그런 실수를 누가 무슨 권리로 용납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하나님의 회복의 유일한 방법은 재창조가 아니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고, 부활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죽음은 영원히 한 번만으로 충분하다. 부활도 영원히 한 번만으로 족하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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