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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250):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2)
모든 우주만물 중에서 유일한 고유명사, 아담과 관련된 하나님의 진리! 다른 그 어느 무엇도 그 사람, 아담이 될 수 없다는 확실한 진실. 모든 사람은 아담의 후손이긴 하지만, 첫 사람 아담과 동일한 사람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해 태어난 자들로 타락한 첫 아담의 후손임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든 이 사실을 받아들일 때만이 인간의 정체성 확립이 가능해진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불러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 질문을 통해서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일지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실 수가 있고, 그 때 우리 각자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곳에 숨어 있는지를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이어지게 하는 우리 각자가 취할 바른 태도이다.
우리도 아담처럼 아내와 더불어 한 가정 전체가 하나님께 불순종한 나머지 하나님이 두려워 나무들 사이에 숨어있는 경우라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서 모두가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린 아담과 하와보다 훨씬 더 두터운 덮개로 우리 몸을 감싸고 꽁꽁 숨어 있는 현실을 스스로를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담 부부가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떠난 후에 개개인이 스스로 벗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두려움이 생겼고,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자 벗은 몸이 두려워 숨었노라고 고백했던 그들 부부처럼 바로 우리도 그들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숨어야 할 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그들은 옷을 입은 적이 없기에 옷을 벗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가 없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않아 하나님과 단절되고, 그들 부부 사이가 나눠지자 서로 상대에게서 다른 점을 발견하고, 두려움이 생겨 무화과나무 잎으로 서로의 다른 부분을 가리게 된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부부도 서로에게 부끄러워 서로를 드러낼 수 없어서 꽁꽁 숨기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도 하나님께선 알고 계시기에 그분 앞에서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아담 부부가 그런 하나님께 다가가서 자신의 언행을 자초지종 사실대로 아뢰고 회개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그의 위상이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첫 사람 부부는 서로 의논이나 한 듯 그들을 알고 찾아가신 하나님 앞에 변명만 늘어놓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 부부를 에덴의 동편으로 추방하신 것조차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오늘의 우리도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지를 알고 그분 앞에서 솔직히 고백할 수가 있다.
물론 사람이 사람 노릇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다른 동물들을 사람 위에 올려놓고, 사람보다 더 낫게 여기는 비뚤어진 모습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짐승만도 못한 ㄴ’이라 욕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귀여운 개나 고양이나, 힘센 코끼리나 사자가 아담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은 자연 속에서 자연을 누리고 살지라도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이다. 아담 외엔 다른 어느 것도 ‘하나님의 형상과 그 모양대로’ 지음 받지 않았기에 아담만이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유일성은 인간 스스로 유일성을 선포해서 그런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셨기에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아담을 아담답게, 사람을 사람답게 지으신 하나님의 그 뜻에 반하는 그 어떤 행위도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아담은 영원히 아담일 뿐, 다른 것으로 설명되지 않고, 그래서 결코 다른 것으로 대치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을 됨의 근본을 잃는 경우가 무엇인가? 곧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을 때, 그 사람은 사람됨을 잃게 된다. 아담, 곧 사람이 그 모습을 잃게 되면 ‘그 종류대로’ 지음 받은 다른 생물들 중 하나가 돼버린다. 사람이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한 것이 비극의 처음이요 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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