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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253): 오직 과거만을 살다간 어느 한 분의 이야기
나는 오늘 아침 아내의 카톡에 담긴 안타까운 사연을 아내가 보여줘서 읽어보았다. 마음에 안타까움을 품고 유명을 달리한지 겨우 며칠이 지났지만, 과거가 돼버린 어느 분의 이야기를 교회의 어느 한 자매가 들려준 것이다. 그분은 자신이 양노원에서 돌보던 노인 중 한 분이었다. 소위 그의 과거는 성공적이었고, 자신의 과거의 삶과 자녀들의 성공적인 삶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신과 가족들의 이야길 들려주곤 했었고, 세계의 여러 곳을 여행하고 그곳 풍경들을 담은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여주기도 했고, 심지어 과거의 어느 교회에서 자신이 설교하면 은혜롭다며 칭찬 받은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고 전했다.
아마도 내 생각으로는 양노원에 들어간 자신의 말년이 약한 자의 신분으로 낮아진 것에 허무를 느꼈든지, 혹은 죽음이 가까운 줄 알고 두려웠든지, 완전히 과거의 자랑스러운 신앙조차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사람에 관한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분이 하나님을 타 종교의 교주와 다르지 않다면서,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인데’,라고 말한 것을 보아서 그는 소위 과거의 자신의 신앙을 가치 없는 것으로 평가절하해서 팽개치고 세상을 떠난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분이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카톡으로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물론 그런 분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우리의 생각과 믿음은 항상 과거에 얽매어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현재의 광야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노예로 살았던 이집트의 과거로 되돌아가려다가 광야 모래 속에 모두 묻혀버린 그들의 과거처럼 어려움의 현재를 벗어나기 위해선 앞으로 전진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되돌아간 마음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잘 알고 있는 우리로서도, 눈에 보이는 육체에 담겨진 과거에 붙들려 과거를 잊지 못하고 때때로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 시간은 여타의 피조물과 다를 바 없다. 시간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 안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긴 해도 모두 단락이 있는 시간의 조각일 뿐이다. 하나님께선 이 시간을 잘 살라고 아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지 않으셨다. 그 죽음을 우리의 죗값으로 받아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계획이다. 만약 하나님을 시간 개념으로 말할 수 있다면, 그분은 항상 현재이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현재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영원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오늘’이라고 말씀하실 땐 24시간 하루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골고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한 편에 달린 죄수 한 사람을 향해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눅23:48). 그 강도에게 구원은 단지 ‘오늘’이 아니라, 그가 감옥에 있던 어제도 구원 받았고, 십자가에서 죽어도 ‘오늘’ 구원 받고, 그 구원은 내일도 계속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오늘 구원받은 것은 시간 속의 겨우 하루일 수 있지만, 그 ‘오늘’은 바로 하나님의 영원과 연결된 된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하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마22:32;행3:13-15). 그렇다. 그들은 물론 시간 속에서 나이를 먹어가며 살다가 육신은 죽어 땅에 묻힌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선 그들이 현재 살아 있다고 밝히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신 영원하신 분이시다. 물론 이스라엘의 조상 세 사람의 육신의 죽음 역시 안타깝고 슬플 일이었다. 첫 사람 아담 역시 에덴에서 먼저 선언해 놓으신 영적 단절의 죽음이었지만, 시간 속에서 그의 육신의 수명은 930년이었다(창5:5).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기에 아담에게 죽음을 경고하셨다.
단지 그의 육체적 죽음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영적 단절을 경고하신 것. 하나님께선 과거를 용서하시지만, 그것은 현재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 있을 때만이 영원히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는 시간의 단절이 없다. 하나님께선 우리가 영원한 현재, 곧 ‘오늘’을 살기 바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