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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256): 예수의 붉은 육성, 그 피의 언어를 묵상하며(2)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4:4).”
예수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늘에서 나온 이런 음성을 들으셨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었다. 예수께선 하늘 아버지로부터 땅위에 보내신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는 인정 하에 그 자격을 가지고 성령의 이끌려 광야로 가셨고, 거기서 40주야를 기도하신 후 시장하셨을 때, 악마에게 받은 첫 시험에 그 악마를 물리치신 주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외침이다. 육신은 배를 채우는 빵으로 살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악마의 시험의 동기와 목표는 한 마디로 주님을 향해 ‘죽지 말라.’에 초점을 둔 강권적인 시험이었다. 악마 역시 요단강에서 주님께서 세례 받은 것이 십자가의 죽음을 예표 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기도하러 온 것을 알고 있었으니 악마의 마음이 편할 리가 있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곧 악마 자신의 죽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창3;15), 주님을 향해서 ‘제발 죽지 말라!’를 강조한 것이 악마의 시험과제였다. 그러나 주님께선 빵으로 배를 채우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산다고 밝히시며 돌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는 첫 시험을 물리치셨다. 돌로 빵을 만들어 시간 속에서 얼마 동안 육신을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영원히 살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흔히 우리가 무슨 어려운 일을 맞으면 ‘우선 살고 봐야지’라고 쉽게 말하지만, 이것은 육신의 삶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영적인 생명은 이차, 삼차, 사차로 밀려나버린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진정 하나님의 영과 만나 영혼이 살아 있을 때만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이다.
사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육신을 위한 먹이에 초점을 두고 산다. 공중을 나는 새들은 먹이를 찾아 하늘을 날아 이동하고, 동물들도 자기들의 먹을 양식이 많은 곳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이동하고, 심지어 풀과 나무조차 물이나 영양소를 찾아 뿌리를 이리저리 펼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소위 그들에겐 오직 육체의 삶이 있을 뿐, 섬김의 영(靈)이 없기에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없다.
사람만이 자기 속에 있는 영으로 섬기며 살아야 하는 대상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영의 양식은 곧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영(靈)을 살리는 양식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에서 육신의 양식인 만나를 40년간 먹이셨지만, 만나가 곧 하늘의 양식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야만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된다는 사실을 알리신 영적양식의 그림자였다. 유대 탈무드를 연구한 히브리 학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은 만나를 신비한 양식임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다른 음식을 먹으면 아무리 잘 소화시켜도 밖으로 내놓아야 하는 찌꺼기가 있지만, 실제로 하늘에서 하루 한 번씩 내려온 만나는 먹으면 밖으로 나오는 찌꺼기가 없을 만큼 완전 소화가 가능한 양식이라 생각한다는 글을 읽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럴 것도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들은 그 많은 무리들이 만나를 먹고 소화가 안 된 남은 찌꺼기를 밖으로 내놓았다면, 과연 그 무리들인 그 가운데서 어찌 살 수가 있었을까?
여기서 사실 여부를 따질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우리가 날마다 먹는 영의 양식은 우리 속에서 찌꺼기가 한 톨도 남지 않게 완전히 소화되었으면 좋겠다. 악마의 시험을 받으신 주님께선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를 인용하셨지만, 악마는 그 말씀 한 마디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고 다른 것으로 시험한 걸 보더라도 주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