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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28): 하나님을 인간의 족보에 등재할 수 있을까?
우리 사람들에겐 잘 알든 모르든 할아버지가 있고, 제일 윗대 할아버지를 조상이라고 부르며 섬기는 걸 미덕으로 삼기도 하고, 때로는 그런 할아버지가 자기 조상이며, 자신은 그의 후손이라 자랑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째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우리 조상으로 족보에 올리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고, 몇 백만 대 조상이라고 생각하듯 할아버지라 부를 수도 있으련만 전혀 그러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 혹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언제부터 존재하셨는지 그분의 근원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몇 대 조상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어서일까? 인간은 그분의 지음 받은 존재이면서도 너무나 오래돼 마치 영겁의 시간이라 헤아릴 수 없어서일까? 하나님을 조상 곧 할아버지라 부르지 않는 걸 당연시 한다.
만약 하나님을 할아버지라 호칭하려면 육신의 후손들이 태어나 계속 이어져서 몇 대 할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데 애당초 지음 받은 시간을 초월해 알파와 오메가로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니 알파 이전에도 오메가 이후에도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으니 어찌 시간을 계산하며, 영원히 바뀌지 않으신 영원한 존재이시며 그분 사이에 이어지는 다른 존재가 없으니 어찌 몇 대째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더구나 우리가 얼마나 오래 계승돼 이어온 존재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몇 대의 할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족보에 기록해 두었으면서도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사이엔 다른 존재가 있을 수 없으니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변치 않는 부자(父子) 관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시지만 할아버지라 부를 존재는 없다. 그분을 형님이라 부르는 우리 역시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각자의 아버지이시고, 예수께선 우리 모두의 영원한 형님으로 나뉠 수 없는 형제 사이이다. 때문에 우리의 영적 족보상의 위치는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히 변함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무리 윗대의 어른으로 모시려고 해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로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창조주로 영원히 주인이요,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저 각각 그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일 뿐이다.
주님께서 세상에서 제자들의 요구로 그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셨을 때, 중요한 첫 마디, 곧 제자들의 기도의 대상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임을 알고 그렇게 부르며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사실은 모든 인류의 아버지는 한 분 하나님이시기에 족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에 계신다고 해도 우리가 미칠 수 없는 분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항상 가까이 계신 영원한 아버지이시다.
사실 믿는 가정에선 동일한 현상이지만, 우리 집의 아들과 딸은 나를 낳으신 아버지나 어머니를 본 적도 없고, 따라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불러본 적도 없다. 그러나 우리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 그리고 우리의 손자들조차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니 우리의 가정엔 대를 이어가는 족보가 없다.
영어로 쓰인 시에 이런 첫 구절이 있다. No one ever sought the Father and found He was not there.(누구도 하나님을 찾지 못한 사람은 없고,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지 않는 걸 본 사람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날 수 없는 곳에 계시지 않다.’는 제목의 첫 구절이다.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와는 달리 하나님께선 우리의 아버지로 어디든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가까운 분이심을 노래한 시이다. 하나님은 먼 옛날의 윗대 어른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아니라, 영원한 현재의 아버지로 누구나 찾고 만날 수 있다. 그러기에 그분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의 믿음은 항상 오늘, 곧 영원한 현재여야 한다. 우리의 현재가 사라지면 하나님 아버지 역시 과거의 역사 속에 묻히는 종교적 신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아버지 외에 다른 이름으로 대치해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