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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29): 하나님의 선택은 편애가 아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모든 사람들을 고르게 모두 사랑해야 할 분이 그 대상을 이리저리 나누고 편을 갈라서 어떤 사람은 제쳐놓거나 처음부터 아예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다른 누구는 특별한 사람인 양 편애하셔서 자기편으로 선택하는 것이라 생각하거나, 그렇게 확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구나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다른 사람을 제외시켰느냐고 대신 불평해주는 자칭 마음 넓은 척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먼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를 사랑하신다고 해도 반드시 그런 하나님을 욕하거나 그분의 사랑을 사정없이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의 편애를 내세워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볼 수가 있다. 또 한 편으로는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이니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말로 다른 생각을 막아버리거나 자신의 그런 생각이 옳은 것인 양 단정 짓는 행위도 반드시 피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택은 많은 사람들을 물리쳐버리고 어느 특정한 사람만을 편애하되 단지 이유 없는 하나님만의 결정이라고 단정 짓는 것이 옳은 생각이나 옳은 태도가 아니라는 점을 미리 헤아려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하나님의 생각이나 뜻에서 모순된 어떤 점이 보인다고 생각되더라도 그런 모순된 점을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로 단정지어버린다면, 그건 하나님을 독선자로 몰아가는 행위이다. 만약 하나님의 독선이 세상의 잔인한 독재자의 독선과 같다면, 그분 앞에서 편안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조차 가능치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택이 편애도 독선도 아니라는 증거는 우리가 우리의 이성으로 찾아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예로 나를 낳으신 부모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는지를 헤아린다면, 한 마디로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분이라고 대답하면 옳은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피조물들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의 본성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8).’ 이렇게 선언돼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편애가 되고, 편애가 독선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빚어진 오해가 아닐까 싶다. 하나님의 사랑이 적용되는 범위는 여러 가지로 많다. 여러 사랑 중의 진수는 긍휼이다.
사랑의 대상을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이 사랑의 진수 중의 진수라는 말이다. 긍휼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보는가? 긍휼을 필요로 하는 자신의 처지를 먼저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자신이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걸 하나님께 고백해야 한다. 자신이 죄인으로 불쌍한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 긍휼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긍휼로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란 사실을 자신의 성육신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심을 몸소 보이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죄인의 형상을 옷 입으신 사실이 어디 보통 일인가? 우리는 그 작고 약한 어린 아기로, 더구나 죽으러 오신 분에게 우리의 요구가 너무나 많다거나 크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깊이 생각해 보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다른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김을 주고받는 것이 행복하다는 뜻이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려고 기꺼이 긍휼을 받아야 할 낮고 약한 죄인의 형상으로 세상에 오셨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으셔야 할 만큼 낮고 약한 분으로 세상에 오신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나 자신을 어디로든 더 높이 더 강하게 올려 세우려는 탐욕의 마음을 억제할 수가 있다. 그런 후에 죄인인 나와 사람이 되신 하나님, 물론 어떤 면에서든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크고 강한 것이 아니라, 약하고 낮아짐 역시 하나님과 비교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고 살아야만 하나님의 긍휼이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여진다. 죄인에겐 긍휼보다 큰 사랑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