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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글(350): 창조주의 행동과 피조물의 순종
우린 순종보다는 눈에 보이는 행동에 초점을 두고 자녀들을 혹은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강조하고, 교훈 할 때가 많다. 순종이 곧 자신의 행동의 진수인 양 ‘순종했다.’는 과거를 내세워 자랑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순종은 내게 명령하는 어느 누구의 행동을 받아들여 그가 내린 명령을 따르는 것이니 실제론 순종하는 자의 행동이 아니라, 명령한 당사자, 혹은 자신보다 앞서 있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자의 행동에 순종하는 것이다. 물론 명령한 주체에겐 그렇게 명령한 뜻도 있게 마련이니 그의 명령을 지키려면 명령한 주체의 뜻을 따르는 종의 순종이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성경에서 주 하나님의 사역을 보필하는 천사가 그분의 메신저로 자주 등장하는데 그 메신저의 행동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종의 순종일 뿐, 종이 마치 자신이 담당한 심부름을 자신의 행동인 양 업적처럼 자랑할 수는 없다. 그래서 천사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종이라고 밝힌 것이다(시103:20). 모든 종들에겐 각 개인의 독립적인 행동이 있을 수 없고, 다만 주인의 뜻을 따르는 순종이 곧 곧 그의 올곧은 행동이다. 주 하나님의 종의 순종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의 정도요 핵심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선 행동은 오직 하나님의 몫이고, 순종은 인간의 몫인 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창조주께서 창조사역의 어느 한 부분도 다른 누구에게도 맡기신 적이 없다. 종은 행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종 여부에 따라 주인의 판단을 받는다. 인간은 창조의 맨 마지막 날에 지음 받은 피조물이고, 그 다음 날에 안식하셨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간의 쉼은 은혜의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인의 쉼이 없이는 종은 쉴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 주인 되신 하나님의 쉼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창조는 오로지 창조주 한 분만의 올곧은 선한 행동이었다. 겉모양을 만드신 행동이든, 그 안에 생명을 불어넣으신 행동이든 오직 창조주 한 분만의 언행으로 모든 피조물이 완성되었다. 그 한 행동보다 위대한 행동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인류가 모두 하나 되어 이룬 그 무엇도 하나님의 행동에 비교할 수 있는 건 없다.
창조주께선 친히 빚어 지으신 그분의 형상을 닮은 종 아담에게 오직 한 가지 금지 명령을 내리셨다. 그 하나의 명령이 하나님과 인간의 주종(主從)관계의 핵심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는 부정명령이다. 하나님 홀로 선악을 알고 그 지식을 행사하시겠다는 한 가지 명령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좋은 것, 곧 선한 것인데, 사람이 자기 눈에 좋은 것을 선이라 말하고, 자기 눈에 좋지 않은 것을 악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한 순간에 깨뜨려지게 돼 있다. 선악의 주인(Lordship)으로서의 하나님께선 선이든 악이든 자신의 선한 뜻에 맞춰 선을 이루시지만, 인간은 스스로 주인이 돼 자기 눈에 좋을 대로 선악을 행사하며 살아가게 돼 창조주와 피조물의 선후관계가 근본적으로 뒤틀려 영적 생명질서가 파기된 채로 살아가게 돼 있다. 결국 아담은 낙원 에덴을 잃고 동편으로 쫓겨나 마음대로 주인행세하며 선악의 지식으로 자기 눈에 좋게 보이는 대로 행동의 주체가 돼 살아간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행동은, 선하든 악하든 시간 속에서 반드시 미완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에 따른 모든 순종은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하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행위조차 제자들의 행동으로 이룰 수 없었다. 다만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이었다. 주님의 명령을 누군가가 오늘 행했다고 내일도 계속할 수 있을까? 주님께서 명령하신 행위는, 이웃 사랑의 요구라도 영원한 사랑이기에 주님만이 끝까지 완성하실 수 있다. 제자들을 비롯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주님이 명하신 걸 순종할 뿐, 우리의 행동으로 주님의 명령을 결코 만족시킬 수는 없다. 주님의 어떤 명령을 각자의 행위로 모두 이룰 수 있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