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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63): 시간과 영원의 관계성
영원은 자존하시는 영원한 하나님처럼 지음 받은 시간과는 상대적 존재가 아니라서 서로 빗대어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시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창1:3-5).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은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 매미 한 마리도 친히 지으신 시간 속에서 존재케 하셨다. 모든 지음 받은 것들은 시간과 공간 속에 자리 잡아야만 존재한다. 그러나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창조주께선 모든 피조물들의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시는 분이다.
사람들은 모두 어제와 오늘과 내일로 구분해서 시간을 말하고, 시간은 그 공간 속에 머물러 있지만, 영원은 그렇게 나누어진 시간의 어느 한 부분이 될 수 없고, 시간은 영원을 벗어날 수 없을 만큼 밀접하지만, 시간이 영원의 어느 한 부분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시간 속에 영원의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시간 속에 붙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그 안에서 영원을 실감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 분이 시간의 창조주 이시다. 우린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니 죽음 이후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사람들의 그런 말이 너무나도 당연해서 부정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서일까? 하나님의 영원을 시간 속에서 찾으려고 우왕좌왕하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직전에 좌우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죽기 전에 자신의 생명을 자기 옆에 함께 십자가에 달려 계신 주님께 이런 부탁을 드렸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눅23:42).”
그는 주님께서 자신처럼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지만, ‘주님의 나라로 들어가신다.’는 사실을 알고 시간을 떠나게 되는 자신을 낙원, 곧 영원 가운데서 기억해 주시기를 부탁드렸을 때, 주님께서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땅위에선 죽음으로 시간 속에서 끝나지만, 낙원에서 누리게 되는 영원한 생명을 보장 받은 셈. 그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신 ‘오늘’은 어제라는 과거의 시간으로 끝나지 않고, 내일이라는 미래의 시간과도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오늘’은 24시간의 하루와는 완전히 다른 영원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에서 오늘의 구원은 어제도 구원 받았고, 오늘도 구원 받았고, 내일도 구원 받았다는 뜻이다. 구원은 곧 영생을 의미하고, 영원이 영원한 생명을 영원히 보장한다. 만약 우리의 구원을 육체의 죽음으로 잃는다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피조물인 시간 속에서 사라져버린다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주님의 부활은 무덤에서 삼일 만에 이뤄졌다. 나는 3일의 마지막 날이 ‘오늘’이라면, 오늘은 바로 새로운 날이요, 구원의 날이다. 어제도 구원받았고, 오늘은 물론 내일도 구원 받은 것. 오늘 구원을 받으면 지나간 날 어제도, 다가오는 내일도, 영원한 현재인 오늘과 연결된다는 뜻이다. 시간은 각자의 소유처럼 쪼갤 수 있지만, 생명을 잃으면, 각자가 살아온 개개인의 시간은 사라지고, 한 죄인이 십자가에서 죽지만, 주님의 초청으로 낙원이라는 영원 가운데 거하는 것처럼, 육신을 붙잡고 있는 시간의 끝자락에서 영원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