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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66):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세 개의 나무 십자가
골고다 언덕에 세워 세 죄수를 처형할 세 개의 십자가가 로마 군병들에 의해 준비되었다. 자신들의 저질은 죄로 인해 이미 나무 십자가에 달려 처형될 두 죄인과 그들 두 사람 사이, 그 중간에 ㅅㅂ자가에 달리신 한 분은 온 세상의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속죄 제물로 유대 땅에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신대로 베들레헴에 ‘점도 티도 없는’ ‘속죄 양’,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오셨다.
어쩌면 십자가에 달린 두 죄수는 지구촌 동서양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 모든 죄인들의 대표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나, 너 누구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인류가 그 자리에서 함께 죽임을 당하려고 모여 있는 그 한 가운데 마치 죄인의 한 사람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선 죄 없으신 분이셨지만, 우리 죄인들을 닮은 죄인의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의 죽음의 현장에 함께 동행 하시는 처절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날 예루살렘과 골고다 언덕에 모인 사람들, 슬퍼서 우는 사람들, 혹은 욕하며 조롱하는 사람들,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거짓을 진실인 양 포장하고 예수를 죽여 달라고 외치던 유대 종교인들, 모든 죄인들 속에서 주님은 마치 바울의 고백처럼 ‘죄인들 중의 괴수처럼’ 너무나도 처절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고통 중에 계셨다.
십자가에 달린 상태에선 그 어떤 장수도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때 십자가에 달린 한 편의 죄수는 그 십자가에 달려 죽을 테지만, 그 죽음으로 생명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향해 죽음 이후를 생각하며 죽음 너머에 있는 생명의 삶을 소망했다. 함께 죽음에 동행하는 다른 편의 한 죄수가 주님을 조롱하는 걸 듣자 그를 책망하고 나서 그는 주님을 향해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자신의 죽음이후를 주님의 나라로 들어가실 때에 자신을 기억해주시길 바라며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주님께 청했던 것이다. 그는 죽음 직전에도 ‘죽으면 그만이야’란 말을 믿지 않았다.
나무에 달리는 것 자체가 부끄러움이지만, 그래도 그는 수치스러운 죄인으로 죽음을 맞으면서도, 자신과 함께 죽으실 주님을 향해 자신의 사후를 하나님의 나라에 의탁한 것이다. 그 때 그는 너무나도 뜻밖에 죽음의 십자가 위에서 주님의 즉답을 받았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 주님의 시신은 아리마대 요셉과 또 한 사람에 의해 새 돌무덤에 장사되었지만, 약속하신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자신의 사후를 주님께 부탁했던 한 죄인의 육신은 어떻게 처리됐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분명히 주님의 약속대로 주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갔다. 여기서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란 주님의 약속대로 ‘오늘’ 낙원에 들어갔다. 그가 낙원에 들어간다는 건 주님의 구원으로 그가 영생을 얻었다는 확실한 보장이다. 우리 중에 누가 ‘오늘’ 구원을 받았다면, 그는 죄로 얼룩진 어제도 구원받았고, 내일도, 아니 영원히 구원 받았다는 뜻이다. 오늘은 단지 24시간 하루가 아니다. 구원 받는 모든 자들에겐 날마다 계속되는 현재의 ‘오늘’은 영원이다. 이스라엘의 유월절이 해방된 새 달 곧 1월 14일은 그들이 해방된 새날이요, 영원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