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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70): 사람 이야기 6
핵가족을 제도화하신 하나님의 이유(2)
이제 하나님의 유대인 만들기를 위한 뜻과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점을 살펴보려고 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으로 반드시 이루실 약속이고, 영원하신 분의 약속이니 하나님의 능력으로 쉽게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에 인간이 반기를 든 것은 에덴에서 이미 시작된 걸 보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인간이 반기를 드는 일이 너무나 당연시 되고, 언제든 일어나는 현실임을 안다면, 언제라도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저항성 불순종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도 있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의 때에, 다시 말해서 인간의 범죄 이전에, 더구나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갖기도 전에 이미 선언해 놓으신 대로 한 집안의 한 아들이 결혼으로 남의 집의 딸을 아내로 맞아 부부가 되면, 남편은 아내와 더불어 부모의 집을 떠나도록 명하셨지만, 육신의 부자관계 단절을 명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영적 부자관계에 방점을 찍어 강조하신 것이다.
아담에게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영적 생명질서를 세우신 것이니 영적 관계의 선후를 인간이 바꿀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근본적인 생명질서가 에덴의 동편에서 태어난 가인의 후손인 노아에게서 깨어지게 되고, 노아의 후손인 아브람의 부름에서도 여지없이 깨진 모습을 보게 된다. 노아의 경우를 보면, 방주를 통해 홍수 심판에서 건짐을 받은 세 아들의 세 가정이 홍수가 끝난 후에도 아버지 노아를 떠나지 않고 있다가 술 취한 아버지 노아의 벌거벗은 수치가 그들에게 드러나게 되자, 노아는 자기 아들들을 서로의 종과 주인의 관계로 선언해 버렸다. 그와 더불어 세 아들의 가정이 인종별로 나뉜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후에 그들 부부가 자녀를 갖기 전에 이런 말씀을 선포해 두신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창2;24).’ 그러나 이어서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25).’는 말씀과 연결된 것을 볼 수 있다. 이 짧은 두 구절에 담긴 의미를 그냥이 지나쳐버려도 괜찮은 것일까?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그의 아들 아브람을 떠나보내지 않고, 아브람의 부부와 먼저 죽은 아들에게 남겨진 그의 손자 롯까지 앞세우고, 아버지 데라가 앞장서서 가나안으로 가겠다며, 갈데아 우르를 떠났지만, 하란에서 눌러 앉아 살다가 죽었다.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 눌러 앉으니 아브람 부부도 눌러 앉자 하란에서 살다가 아버지 데라의 죽음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다시 부르셔서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거기에 정착하지 않고, 더 나은 땅 이집트로 들어갔다가 사라를 빼앗길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들의 잘못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마저 사라질 위기를 겪었다. 사람들의 생각대로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쉽게 깨뜨려졌는데, 오늘의 우리는 그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살아가도 있다. 누구 때문이든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무너지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 것.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생명질서에 관한 그분의 뜻이 사람들의 가치관에 부딪쳐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