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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51): 예수 그리스도의 육성, 그 붉은 말씀의 묵상(1)


1. 12세 소년 예수의 독립선언(2:49)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유대 땅 북부 갈릴리 시골 소년이 부모를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 하나님의 집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짤막한 선언의 한 토막이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땐 비록 말구유에 누인 바 되었지만, ‘아기 예수는 자라면서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2:40).’는 말씀처럼 유년기와 소년기를 갈릴리 나사렛에서 아름답게 보내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한 시골 소년이 소위 서울, 아니 예루살렘에서 한 말이지만, 오늘날의 영악한 그 어떤 소년의 입에서도 나올 수 없는 자기 선언이란 점에서 쉽게 흘려보낼 수가 없다. 자기 부모에게서 배운 말도 아니었고, 동네 어느 회당의 랍비에게서 배운 말도 아니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선 그의 아버지이시고, 자신은 그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의 독립 선언은 결코 평범하거나 쉬운 말이 아니었다


그가 장성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라, 비록 어린 소년이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땅위에 태어났다는 선언이고, 이미 그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 때 그를 찾아 동방에서 온 사람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신가?‘라고 물었던 것처럼 그가 시간 속에서 자라나서 언젠가 때가 되면 유대인의 왕으로 선언될 자가 아니라, 아예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애당초 하나님의 아들이란 선언이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가 태어나기 전에 성령에 의해서 알게 된 사실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아기를 죽이려는 헤롯을 피해서 이집트로 피난을 갔던 사실을 떠올려 보면 소년 예수의 정체성 선언이라 말할 수 있는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라고 되묻기 전에 이미 알고 있어야  했다


그렇다. 우리는 시간의 제한 속에서 살면서 영원한 하나님의 뜻이나 계획을 깡그리 잊고 살 때가 너무나 많다. 시간 속에 있는 것들은 시시콜콜한 것들도 잊지 않고, 되새김질하며 애태우면서도 정작 영원한 생명에 관한 중요한 일은 오랫동안 영혼 속에 간직하지 못하는 약점을 지니고 산다.

12세 소년 예수의 정체성의 독립 선언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오히려 예수를 오래 믿었다는 나 같은 노인들에게 더 강력한 경고가 아닐까 싶다. 세월을 살면서 아버지에서 할아버지로 이렇게 이동하다 보니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지는 않는지 나 자신에게 묻고 싶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소년 예수 당시엔 종교지도자들은 더더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종교적 경건이라 여기며 자랑하며 살았다. 성전에서 그들과 주고받은 문답들이 소년 예수에게 과연 어떤 사실을 알게 했을까? 그들의 대화 상대는 서로 달랐다. 소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칭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는 종교지도자들은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가 부르지 못하는 비인격적인 종교인들이었다


더구나 그 소년은 그가 땅에서 함께 살고 있는 그 가정의 부모를 뛰어넘어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자신은 지금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자기 의지대로 있다는 사실을 부모 마리아와 요셉에게 분명히 밝힌 걸 볼 수 있다. 이것이 소위 그 소년의 영적 독립성이다. 그가 청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실 땐,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적합하지 않다(10:37).’고 자신의 정체성의 독립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셨다


하나님의 아들사람의 아들로 하늘 아버지에 의해서 보냄을 받았다는 그의 정체성이 무시되면, 그의 복음이 사라진다. 그가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사람이라는 그 진리가 무너지면 하나님의 진리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뜻이다. 2천년 전 한 12세 소년의 정체성의 독립 선언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이다<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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