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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88): 회복이 가져다 준 하나의 기쁨(1) 


하늘을 찌를 듯 소리높이 외치는 기쁨의 함성일지라도 하나하나 다른 기쁨이 합쳐진 큰 기쁨이 아니라, 하나의 기쁨을 같은 마음으로 동일하게 받아들여졌을 때, 그 하나의 기쁨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의 함성일 수 있다. 각자의 계산된 나름대로의 기쁨이 아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 마치 세분이 한 분처럼 오직 하나의 뜻을 함께 나누어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하나는 단순히 셈법상의 숫자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하나 더하기 하나, 또 더하기 하나라도 셋이 아니라, 하나일 때 삼위 하나님으로 한 분, 하나이신 것처럼 영원히 하나가 초점이다. 하나님께선 친히 지으신 사람과 하나였을 때, 심히 좋다고 하시며 에덴동산에서 사람과 함께 기쁨으로 낙원을 누리기 바라셨다. 그러나 사람이 불순종하고 하나님과 나누어져 떠났을 때, 하나님의 하나의 기쁨을 모두 잃게 되면서 에덴은 결국 철조망이 쳐진 슬픔의 동산이 되었다


하나의 기쁨을 잃어버리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쁨을 회복하시는지를 설명해주는 교훈이 누가복음 15장의 세 가지 비유라 생각되었다. 먼저 100마리 양떼 중에 한 마리를 잃은 목자가 있고, 다음 생명 없는 드라크마 한 푼을 잃어버린 한 여인도 있다. 셋째 비유는 슬하에 두 아들 중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가 슬픔에 잠긴 아버지가 있다. 각각 드라크마 한 닢과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비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들은 소유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상황이 연상되기도 한다. 드라크마 한 닢을 잃은 여인이나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목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과연 무엇을 잃고, 또 왜 슬픔에 사로잡혔는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집을 나간 작은 아들이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의 기쁨을 통해 나그넷길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였다


그렇다. 과연 우리가 삶 속에서 잃어버릴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아들이 돌아왔을 때, 그가 가지고 나가 허랑방탕해 탕진했던 모든 물질까지도 회복된 기쁨의 어떤 것인지를 볼 수가 있다. 세 가지 비유이면서 내 눈엔 한 가지 비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무언가를 잃어버린 자에게 기쁨이 오는 건 언제인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았을 때, 기쁨이 회복되었다는 걸 세 가지 비유가 동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세 가지 비유 모두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았다고 해서 실제로 주인에게 물질적으로 회복돼 더 나아진 것은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세 가지 비유가 모두 회복된 물질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물질을 사용하면서도 보다 커다란 기쁨으로 충만해진 모습들을 보게 된다. 아마도 세 가지 비유를 보면 세 사람 각자에게 소유를 잃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었을 때 그들 각자가 누리는 기쁨은 별로 없었을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열 드라크마를 가진 여인이 하나도 잃지 않고 온전히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만으로 진정 만족하며 기뻐했었을까? 더 많이 소유하려고 더 많은 땀을 흘렸을 테지만, 잃은 한 닢을 찾았을 때의 누린 풍성한 기쁨은 없었을 터. 그 한 닢을 잃지 않고 소유하고 있었을 때, 그가 자기 손 안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이웃과 더불어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을 지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은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 또 어느 목자가 한 마리 양을 잃지 않고 양 100마리를 그대로 소유하고 있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거나 혹은 그가 벗과 이웃에게 자신의 양이 100마리라고 자랑할 수는 있었겠지만, 이웃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 아들을 잃은 그 아버지의 경우는 다른 두 비유와는 다르다. 두 비유에선 주인들의 노력과 땀으로 잃은 것을 되찾았지만,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집에서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이것이 물질과 사람의 차이점이다. 물질은 사람이 스스로 찾아야 하지만, 그 아들은 자기 몫을 챙겨서 스스로 아버지를 떠났으니 그가 스스로 아버지께 돌아와야 한다. 결국 그가 제 발로 집으로 돌아왔고, 아버지는 그를 받아들여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켜서 이웃과 더불어 커다란 기쁨의 잔치를 베푼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큰 아들은 가족이나 이웃들과 그 기쁨을 공유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동생과 그 이웃들과 기쁨을 나누지 못한 큰 아들은 과연 어디서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 큰 아들 역시 회복되어야 할 탕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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