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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53); 하나님의 행복을 부정하는 자의 운명!

  크리스천들만큼 축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축복과 행복이 동의어이니 당연하지만, 행복에 목말라하는 그 열정만큼 불행이 일상의 동반자로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물론 크리스천들의 행복, 혹은 축복에 관해서 한 가지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면, 크리스천들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 곧 그분의 불쌍히 여기시는 자비를 은혜로 알고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그 정체성을 잃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세상에서 취득한 우리 각자의 성공과 그 힘의 소산이 행복이나 축복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린 중요한 축복의 열쇠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어떤 행위나 어떤 공로가 축복을 가져다 준 걸로 착각할 때가 많지만, 그것은 행복에 관한 정의부터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을 때, 그런 착각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의 축복은 개개인의 재능, 혹은 능력으로 성취한 성공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아서 누리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에 항상 수동태로 표현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것일 뿐, 스스로의 능력이 만들어낸 개인의 영원한 행복은 없다


애당초 인간은 에덴에서부터 하나님과의 생명 관계 단절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존재이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과의 생명관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 단절이 곧 죽음이요, 불행이다. 그래서 축복을 받아서 행복해진 사람을 말할 적에 영어 표현은 ‘be blessed’라는 수동태로 표현된다. 'blessed'를 형용사로는 행복한(happy)’이란 뜻이지만, 그 어떤 행복도 스스로 만들 수 없고, 행복이 각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그저 스스로의 위로일 뿐, 새빨간 거짓말이다. 순간마다 변하는 마음의 행복, 감정의 소산을 누가 보장한단 말인가?

빌립보 교회를 향해 기뻐하라.’는 바울의 권고(3:1;4:4), 그 자체가 이상하게 들리지만, 행복의 기쁨은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이기에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대표적인 행복론인 산상수훈을 아무리 읽고 묵상해도 각자의 마음속에 쉽게 행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은 사람들이 그들 마음먹기로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산상수훈이 입증해 준다. 그런데 소위 축복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독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화있을진저(Woe)'란 저주를 일곱 번씩이나 계속 외친 사실에 놀라움을 금지 못하면서도 주님께선 그들을 마치 상종 못할 자들처럼 왜 그토록 무섭게 저주하셨는지 이해하려고 먼저 산상수훈의 축복과 견주어 그들이 받은 저주를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저주를  곧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행복의 상대개념으로 받아들였다. 누구든 하나님의 행복, 아니 하나님을 떠나면 곧 저주 아래 있다는 뜻이다. 누구든 그리스도 예수로 행복할 수 없다면, 그것이 바로 저주 아래 있는 불행이란 말이다. 사실 유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해서 그들 스스로 주인 노릇, 곧 하나님 노릇하며 살았다. 주님께서 이미 저주 아래 있는 그들의 현실을 화있을진저의 대상으로 지적하신 것. 물론 그들은 그들의 삶을 저주로 생각지 않고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지만, 일곱 번의 저주를 기록한 마태복음23:1-30절까지를 읽어보면, 그 중에 네 번(23,25,27,29)이 그들의 최대 약점인 위선 혹은 교만을 향한 저주이다


일곱 번의 저주에서 교만을 드러내려는 위선의 비중이 가장 크다. 그 다음으론 그들이 천국 문을 가로막고(남의 행복을 가로막고), 자신들도, 남들도 못 들어가도록 가로막는 방해 행위가 저주의 대상이었다(13). 다음엔 복음으로 생명을 얻은 사람들을 그들의 종교 속에 가두어 두 배나 지옥 자식들이 되게 하는 행태를 저주한 것이고(15), 이어서 스스로 소경이면서도 다른 소경을 인도하는 위선 행위에 대한 저주이다(16). 하나님을 떠난 그들을 뱀과 독사의 자식들이라 지칭하시고, 그런 위선적 행위가 곧 거짓된 사탄의 짓이기에 저주하신 것이다. 결국 항상 하나님의 유일한 행복의 길을 가로막고 서있는 자, 그가 바로 사탄인 저주의 대상이다<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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