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게시판

HOME > 나눔터 > 나눔 게시판

짧은 글(282): 물의 죽음으로 빚어진 생명의 포도주

 

갈릴리 가나의 첫 기적, 포도주는 물의 죽음이 빚어낸 것이라 말하면 어떨까 싶다. 어떤 이는 이 비유를 단순히 하나님의 물이 포도주가 되도록 화학적 반응을 일으킨 것이라 설명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하나님의 하신 일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다가 그런 말을 한 것일 수는 있지만, 비유 속엔 원래 하나님의 숨겨진 뜻이 들어 있는 것이기에 영적 의미를 살피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물론 물이 포도주가 되었으니 포도주가 물을 더욱 아름답게 빚어낸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터. 누가 떠다 준 물을 마셨는데, 그 순간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면, 그런 변화를 화학적 반응이라 설명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포도주를 마신 다음 난 붉은 물, 혹은 좋은 물을 마셨다.’라고 자랑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내가 물을 마셨다고 말하면 누구도 장하다거나 부럽다고 말할 사람도 없겠지만, 누가 포도주를 마시거나, 더구나 오래 된 고급 포도주를 마셨다고 말하면 더더욱 놀라워하고 부러워할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즉 포도주와 물은 다르다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주님께서 행하신 첫 기적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잔칫집의 난처한 부끄러움을 잠재워서 도와주신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 기적 속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그 잔치에 초대를 받았던 마리아가 나와서 주님을 향해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알렸을 때, 주님께선 마리아가 전하는 말에 자신의 때가 있음을 말씀하셨지만, 주님께선 일꾼들에게 물을 여섯 개의 항아리에 채우라고 말씀하셨다. 일꾼들은 물을 아귀까지 가득 채웠다. 물이 꽉 찬 항아리 안에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다만 물을 퍼내어 손과 발을 씻으려면 물을 사용해야 한다. 물의 사용은 곧 물이 없어지는 물의 죽음이다


주님께서 일꾼들로 하여금 분명히 물을 가져다가 여섯 돌 항아리를 채우라 말씀하셨고, 일꾼들이 항아리의 아귀까지 물을 채웠고, 그 다음엔 그 물을 떠다가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라고 명하신 대로 물을 떠다가 연회장에게 가져다주었는데, 일꾼들은 자신이 떠다 준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을 알았으나 연회장은 그 변화를 알지 못하고, 신랑 집에서 그렇게 마련해 둔 것으로 알고 칭찬한 걸 볼 수 있다. 분명히 물을 한 번 사용하면 더 이상 쓸 수 없고 그 물은 없어져야 하지만, 그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물의 죽음으로 얻게 된 새로운 것이 곧 포도주였다. 물이 찌개국물이 되면 그것은 물이 아니라. 찌개이다. 찌개 속에서 물은 죽은 것이듯이 포도주 안에선 물이 죽은 것이다


물론 수소 2분자와 산소 1분자의 융합으로 이뤄진 것이 물이지만, 어느 하나를 빼면 물이 아니고, 또 다른 것을 넣어서 보태면 더 좋은 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물은 죽는다


돌 항아리에 들어 있던 물이 일꾼들이 연회장에게 가져다주었을 때 포두주가 되었다. 새로 탄생한 포도주는 처음 항아리에 담겨 있을 때의 물과는 전혀 다르다. 포도주 안에서 물은 죽어서 포도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물을 마시고 운전하면 괜찮지만, 포도주를 마시고, 운전하면 교통법규에 위반이다. 물과 포도주는 다르다. 사람의 몸은 물이 70%라고 말하지만, 몸의 절대 다수가 물이라고 해도 물이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 ‘사람은 곧 물이다.’ 혹은 물이 곧 사람이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주로 우리 이마에서 땀이 날 때 우리 몸에 물이 있다는 걸 경험하긴 해도 그것도 땀이지 물은 아니다. ‘이마에서 물이 나온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애 달려 돌아가실 때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19:34). 우리가 몸에 상처가 났을 때 피가 나오면 피가 나온다고 말할 뿐, 누구도 피와 물이 나온다고 말하진 않는다. 피 속엔 물이 있을 테지만, 피 속에선 이미 물은 죽은 것이다. 마치 가나 혼인잔칫집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했을 때 물의 죽음과 포도주의 생명을 십자가에 흘리신 피와 물로 미리 보여주신 것.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베푸신 기적은 바로 자신이 십자가의 죽음을 위해서 땅에 오신 메시아이심을 선언하신 기적이었다. 첫 메시지가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선언이었고, 첫 기적이 메시아로서의 죽음과 부활의 선포였다.

No. Subject Author Date
Notice 2024 VBS (여름성경학교) 등록 안내 관리자 2024.03.29
Notice 그레이스교회 제3대 담임목사 청빙공고 관리자 2023.10.13
Notice 온라인 헌금 안내 관리자 2020.03.23
969 교만과 우상숭배 김우영 2020.11.06
968 짧은 글(304): 사람의 이야기(4)-낙원에서 사탄의 숙주가 된 인간- 김우영 2020.11.05
967 짧은 글(303): 사람의 이야기(3)-낙원에서 사탄의 숙주가 된 인간- 김우영 2020.11.01
966 [부고] 박세진 권사 관리자 2020.11.01
965 짧은 글(302): 사람 이야기(2)- 낙원에서 사탄의 숙주가 된 인간- 김우영 2020.10.31
964 짧은 글(301): 사람 이야기(1)-낙원에서 사탄의 숙주가 된 인간- 김우영 2020.10.30
963 2020년 10월25일 성례 안내 file 관리자 2020.10.20
962 공동의회 결과 공고 file 관리자 2020.10.18
961 직원(제13대 집사, 제11대권사)선출 공동의회 공고 관리자 2020.10.03
960 하반기 삶공부 및 특강 소개 file 관리자 2020.09.19
959 [부고] 문영자님(모재숙집사 모친) 관리자 2020.09.12
958 짧은 글(300): 예수의 붉은 육성, 그 피의 언어를 묵상하며(4) 김우영 2020.09.03
957 짧은 글(299): 생명과 죽음을 선악의 지식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 김우영 2020.08.31
956 짧은 글(298): 하나님의 전쟁(7) -그 성격과 의미- 김우영 2020.08.31
955 짧은 글(297): 행복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3) 김우영 2020.08.26
954 짧은 글(296): 죽음의 길, 혹은 생명의 길, 어느 길에 서있는가? 김우영 2020.08.18
953 짧은 글(295): 하나님께선 왜 선악의 지식을 금하셨을까? 김우영 2020.08.15
952 짧은 글(294): 원형을 잃어버린 인간(3) 김우영 2020.08.09
951 [부고] 기영호 집사님 소천 관리자 2020.08.06
950 짧은 글(293): 순종과 믿음의 상호관계 김우영 2020.08.06

교회안내

그레이스교회
4000 Capitol Dr., Wheeling, IL 60090
Tel : 847-243-2511~3
church@igrace.org (church)
webmaster@igrace.org (Webmaster)

찾아오시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