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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276): 잔디는 잔디여야 산다!(2)

 

어쩌면 글 제목을 하나님의 잔디 깎기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 하나님의 심판의 성격을 닮았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앞세워 가나안 땅을 정복토록 하시면서 먼저 가나안 땅의 관문인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실 때 그 전략까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모두 지시된 상태인데, 손에 칼을 빼든 어떤 한 사람이 등장했다. 여호수아가 범상치 않은 이 사람을 보고 그에게 대뜸 어느 편이냐고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는 어느 편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더구나 그는 나는 주님의 군사령관으로 여기에 왔다(5:14).’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그는 이스라엘 편도, 여리고 편도 아니라고 답했다. 어쩌면 여호수아는 그가 당연히 이스라엘 편인 줄로 알고 물었을 텐데, 더구나 하나님의 군사령관인데 어떻게 이스라엘 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선 과연 누구의 편일까? 그의 대답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일까? 하나님의 군사령관이 어느 편도 아니라고 밝힌 것 자체가 하나님의 분명한 뜻일진대 하나님의 사랑과 미움을 보면서 누가 감히 하나님을 자기 편 혹은 남의 편, 이렇게 나눌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선 어느 한 편을 편애하지 않으신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선 공평하신 분이라고 일방적으로 추단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선 분명히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를 미워하셨다(9:13;1:2-3)고 밝혀놓으셨다. 쌍둥이라도 각각 다른 개체로 다르게 대하신다는 뜻이다. 내가 누구를 사랑할 때 나와 관계가 있건 없건 똑같이 사랑할 수가 있겠는가? 전혀 다른 사람을 무조건 똑같이 대한다면, 그것이 곧 편협이다. 똑같은 사랑이라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실은 야곱이나 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기에 동일하게 미움의 대상이기에 양쪽 다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다. 누가 죄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그는 구원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 주장하며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 곧 불쌍히 여김을 뿌리치는 자가 있었고, 지금도 존재한다. 하나님 앞에선 모두가 죄인이지만 그 신분을 거부하는 자에겐 하나님의 긍휼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죄인 모두를 사랑하신다면, 실제론 사랑도 은혜도 가능하지 않다. 쌍둥이 중에서 야곱을 사랑하신다고 미리 말씀하신 건 그 사랑이 곧 편애가 아닌, 긍휼이란 뜻이다


바울은 출33:19, ‘내가 긍휼이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란 말씀을 인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밝혔다(9:15). 하나님의 긍휼은 결코 편애가 아니다. 불쌍한 사람, 약한 자, 어린소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이다. 스스로 강하고 부한 자를 향해 불쌍한 자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 거라 생각하는가? 자존심 상한다며, 기분나빠하며 네가 무언데 나를 불쌍히 여겨라며 거세게 항의할 것이다


하나님께선 이미 쌍둥이가 세상에 나와서 선후 상하나 혹은 강약으로 구분되기 전에 야곱을 불쌍히 여기시기로 선택하셨다면, 그 사랑의 선택을 누구도 불공평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어느 가정에 아픈 손가락이 있다면 그를 향한 부모형제의 긍휼이 편애일까? 하나님께선 왜 둘 다 불쌍히 여기시고 둘 다 선택하지 않으셨을까, 이런 불평이 가능할까? 둘 다를 누구도 동일하게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모두 다르게 지으셨기 때문에 동일한 사랑을 주어도 다르게 받아들이게 돼 있다. 결국 각각 다른 사람을 다르게 사랑하는 것이 선택이다. 누구든 하나님의 긍휼을 싫어하는 자존심 강한 자가 어디든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이 모태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신 것이다. 누굴 긍휼히 여기는 건 편애가 아니다. 아이와 어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아기를 먼저 구한 것이 편애인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들이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반드시 존재한다. 누구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까지 그는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다. 그렇다. 잔디로 살아남으려면 잘려 나가는 아픔의 부분도 있게 마련이다. 잘려나간 부분도 다른 잔디를 위해 쓰임을 받을 수 있고, 긍휼로 인한 회복을 소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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