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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45): ‘언어의 줄다리기’ (1)


나도 오랫동안 글을 쓰면서도 언어 표현의 줄다리기에는 실수를 범치 않으려고 늘 조심하는 편이라서 언어 줄다리기란 말을 듣는 순간 그 표현이 낯설지 않고, 금방 가슴에 와 닿았다. 아마도 옛날에 실제로 육체적인 줄다리기 경주, 곧 씨름을 해봤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언어 줄다리기란 하나님의 말씀, 곧 성서 가운데 등장하는 하나님의 언어와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언어와는 치열한 줄다리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우리는 흔히 언어 소통의 어려움을 말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일지에 대해선 깊이 헤아려보지 않는데 익숙하다. 소통의 언어가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는 동일하더라도 그 언어에 담긴 뜻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했으면 좋겠다. 우선 크리스천이라는 우리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또는 읽을 적에 우리 귀는 그저 사람의 언어와 동일한 수준, 같은 뜻인 양 그 말씀을 받아들여 이러쿵저러쿵 대응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상식적인 수준에서 접근해 이해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하나님의 언어와 우리의 일상의 언어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미상으로 차원이나 강조점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정말 흔히 아이들의 말처럼 하나님의 언어와 우리의 언어는 하늘만큼 땅만큼그 간격이 커서 쉽게 구별해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서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로 번역돼 있어서 당연히 생겨난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언어의 발음이나 글자의 모양새를 보기 전에 온 우주만물을 그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언어와 그분을 통해 지음 받은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해야 오해 없이 바르게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는 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누구든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살피고 묵상하는 습관을 갖지 않으면 하나님과는 소통이 아니라, 쌍방 간의 의미 전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찾은 쉬운 예 하나. 우선 한 가정에서 서로 소통이 가능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어느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의 뜻을 몰라서 잘못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부드럽게 몇 차례 훈계를 했지만, 그 아들이 여전히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때, 그 아버지는 그를 불러 세우고, ‘, 이놈아 너는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당장 집에서 나가!’라며 회초리를 휘두르자, 그 아이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집을 나갔다면, 그가 자기 아버지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마침 그의 엄마가 집을 나가는 아이를 붙잡고, ‘그렇다고 집을 나가면 어떻게 해, 당장 아버지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어!’라고 말하며 자기 아들을 붙잡아 둔 예가 실제로 있을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예는 그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마음을 읽지 못해서 빚어진 헤픈닝일 수가 있다. 하지만, 에덴에선 하나님께서 첫 사람 부부를 부르셔서 각자에게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히시고 에덴 밖으로 쫓아내셨고, 하와를 유혹한 뱀에겐 책임 소재를 추궁하지 않으시고, 여인의 후손을 통해서 머리가 박살 날 거라고 주저 없이 한 마디로 그를 저주하신 걸 볼 수 있다(3:15). 


에덴에서 발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저주의 심판이었고, 재판관의 최종선고였다. 물론 아담과 하와는 서로를 핑계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언어를 거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에덴에 남아 있는 생명나무의 길을 엄히 막아두셨고,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첫 사람이 에덴에서 쫓겨나 죽음을 사는 삶이 현실이 되었지만, 생명나무의 존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계속될 거라는 약속의 증표로 보존된 걸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선 먼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는 분이시기에 공의를 위한 하나님의 심판과 죄인 구원을 위한 은혜가 동전의 양면이 돼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깊이 새겨져 있다. 그렇다. 우리의 언어의 줄다리기는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언어의 의미 찾기가 먼저이고, 우리의 순종은 그 바른 뜻을 따라가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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