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게시판

HOME > 나눔터 > 나눔 게시판

짧은 글(189): 회복이 가져다 준 하나의 기쁨(2)

 

누가 자신이 가진 것들 중에서 어느 하나도 잃은 것 없이 자신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않고 꽉 움켜쥐고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하고 기뻐할 자는 실제론 별로 없다. 왜 그럴까? 아마도 주변에 자기보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이 있다면, 그들과 비교하면서 각자의 기쁨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이 내면의 갈증을 더더욱 부추기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유욕의 갈증을 갖지 않은 자가 없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가 없다


보다 근본적인 인간 불행의 문제는 누구나 하나님과 단절돼 영원한 생명을 잃은 자로 단지 시간 속에서 죽음에 잡혀 있는 수명을 살고 있기에 그 사람 자체가 인간의 실패라는 걸 알기에 모든 소유로 달랠 수 없는 생명을 잃은 자의 슬픔을 안고 단지 숨을 쉬고 있을 뿐이니 그런 삶 속에서 무언가를 손에 넣은 것으로 혹시 만족하며 살고 있지만, 그런 와중에 자기 손 안에 있는 것을 어느 정도 잃었다고 해서 그로 인한 슬픔이 전부일 수가 없기에 한 드라크마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여인처럼, 혹은 잃은 양 한 마리를 다시 찾은 목자처럼 단지 잃었던 것, 손실했던 물질을 다시 손에 넣었다고 해서 그런 물질의 보충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것이 당면한 현실이다


참된 행복이란 잃었던 작은 아들을 되찾게 된 그 아들과 아버지의 행복이다. 그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다고 생각할 만큼 잃어버린 아들의 생명 회복이 그 아버지의 기쁨이요, 그 아들의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잃었다가 되찾은 한 드라크마, 잃었던 양 한 마리는 각각 주인이 힘써 찾아서 제 자리로 돌아왔기에 그래서 주인은 행복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드라크마 한 닢이나 양 한 마리에겐 기쁨도 행복도 표현한 길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께로 돌아온 아들은 살아 돌아온 것이고, 그 자신이 감히 꿈을 꾸지 못했던 그 아버지의 아들의 신분이 회복되면서 당사자는 물론 그의 아버지도, 그의 이웃들도 모두 행복을 충만하게 경험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자기 동생이 집을 나가 아버지께 상처를 준 사실을 알고 있던 그 아버지의 큰 아들은 동생과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하지 못한 게 너무나도 아쉽다. 그에게 다른 걱정이 있었을 것 같지 않다. 다만 그는 아버지의 집을 떠난 동생과 비교해서 더욱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한 편으론 동생이 집을 나간 것이 자신에게 더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이 잘된 것보다는 남이 잘못된 것에서 이익을 얻고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그 형의 마음을 조금은 읽을 수가 있다. 자신은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니 그는 더더욱 성취감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동생이 돌아오자, 그의 현재 행복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동생과 비교해서 박탈감만 솟구쳤다. 그는 아버지와 같이 살면서도 아버지를 믿지 않았고, 그의 동생도 물론 믿지 않았다. 그의 불신앙이 곧 미움이고, 곧 아버지와 동생과의 단절이다. 남들과의 단절은 자신의 주인 노릇이다


실제로 하나님 아버지의 집인 교회에 ha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아버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분의 자녀들인 다른 형제들조차 적대관계로 보고 있다면, 그들이 곧 비유 속에 등장한 큰 아들과 닮은 자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주님께서 땅에 계실 때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처럼 하나님 아버지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종교인의 민낯을 탕자의 비유 속의 큰 아들에게서 읽을 수가 있다


단지 누구든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 자체가 곧 진정한 회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비유 속의 큰 아들처럼 아버지와 같이 살면서도 아버지와도, 돌아온 동생과도 적대관계인 양 불편하게 행동한 것을 보면 아버지의 아들의 신분도, 한 동생의 형의 신분도, 곧 생명관계를 망각해버린 것을 볼 수 있다. 더구나 이웃들의 기쁨 역시 눈감아버렸다. 비록 그가 누구든 온 몸에 아픈 상처를 그대로 갖고 있더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그분을 아버지로 받아들여서 그분의 자녀가 되는 인격적 교류와 만남이 곧 참된 믿음의 시작이요, 진정한 회복의 길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No. Subject Author Date
Notice 2024 VBS (여름성경학교) 등록 안내 관리자 2024.03.29
Notice 그레이스교회 제3대 담임목사 청빙공고 관리자 2023.10.13
Notice 온라인 헌금 안내 관리자 2020.03.23
1122 짧은 글(192): 당신의 선악과, 오늘의 맛은 어떤가요?(2) 김우영 2020.02.11
1121 짧은 글(258): 거짓 교사와 무식한 교사(1) 김우영 2020.05.09
1120 짧은 글(314): 사람의 이야기(10) -낙원에서 사탄의 숙주가 된 인간 김우영 2020.12.08
1119 단금 6일 file 관리자 2021.03.26
1118 *양은 주인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37) 김한철 2023.10.30
1117 *출소후 첫 주일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다* 2/4/24 김한철 2024.02.09
1116 *Youth Group 팀이 마이클 면회가다* (40) 김한철 2019.09.11
1115 *Michael 면회 결심한 황 집사의 깊은 사랑* (50) 김한철 2019.10.04
1114 짧은 글(129): 원형을 벗어나는 것이 과장이다! 김우영 2019.10.09
1113 짧은 글(142): 나의 글읽기와 글쓰기 김우영 2019.11.11
1112 짧은 글(151): 삶과 쉼의 이어가기(1) 김우영 2019.11.25
1111 짧은 글(273): 잔디는 잔디여야 한다!(1) 김우영 2020.06.04
1110 짧은 글(291): 원형을 잃어버린 인간(1) 김우영 2020.08.02
1109 짧은 글(369): 사람 이야기 5 김우영 2022.05.20
1108 짧은 글(373): 그 말씀에서 싹튼 생명의 씨앗들(1) 김우영 2022.07.09
1107 짧은 글(374): 사람 이야기 9 김우영 2022.07.10
1106 짧은 글(388): 크리스천 공동체 안에 있는 고독의 문제 김우영 2023.01.02
1105 짧은 글(422): 나무 이야기 3 -The Oak- 김우영 2023.11.01
1104 짧은 글(113): 하나님의 하나(4) -구원의 뿌치 찾기- 김우영 2019.09.01
1103 짧은 글(134): 생명의 열쇠로서의 믿음과 순종(2) 김우영 2019.10.26

교회안내

그레이스교회
4000 Capitol Dr., Wheeling, IL 60090
Tel : 847-243-2511~3
church@igrace.org (church)
webmaster@igrace.org (Webmaster)

찾아오시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