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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05): 눈을 뜨고 살까, 차라리 눈을 감고 살까(2)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일까? 우리의 영을 새롭게 단장하고 싶고, 깨끗한 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 곁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고 싶지만, 그런 진실하고 가난한 소망을 방해하는 요소가 바로 우리 속에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욕망을 부채질하는 우리의 육신이고, 눈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자랑거리를 소유하고픈 욕망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사도 요한은 그의 편지 요일2:15-17까지에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권하면서, 우리가 사랑해서는 안 되는 세상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이라 분명하게 지적한 걸 보게 된다. 새 번역으로 세상 살림이라 말한 것은 세상에 살면서 얻은 것들을 자랑거리로 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 세상살이의 자랑 역시 일종의 욕망이란 뜻이다. 육체의 욕망, 눈의 욕망, 세상에서 얻은 것들을 자랑하고픈 모든 것들이 우리의 육적 욕망으로 얻어진 것들로 육신을 채워 그것들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모든 욕망을 동원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우리가 세상을 사랑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사랑의 주체는 곧 우리의 육체이기 때문에 결국 육체가, 우리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갖고 싶은 욕망이고, 그런 욕망으로 이룬 것들을 자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삶의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살려면 육체의 욕망도 더더욱 키울수록 좋고, 눈의 욕망을 위해선 특별한 안약이라도 더 자주 넣어야 더 밝아질 것이고, 그래야 세상의 자랑거리가 더 많아질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살고 싶은 것이 우리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인 삶의 태도이다. 그렇게 살아야 만 세상에선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 이것이 상식이다.  

 

우리의 육적인 눈이 밝아질 때 오히려 우리의 영안은 더욱 더 어두워지면서 끝내 영적 소경이 되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을 전혀 볼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이 벌어진다. 결과적으로 우리들은 밝은 육안에 현미경까지 들이대고 세상의 다른 신들(gods)을 찾아 동분서주하게 된다. 하나님 한 분 외에 세상의 모든 것들이 각자가 좋아하는 신들이 될 수 있고, 더구나 그런 것들이 나름대로 세상의 기쁨과 쾌락, 어쩌면 날아갈 듯한 만족과 행복감을 선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선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맨 먼저 심령의 가난을 주문하셨고, 그런 가난으로 세상에서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천국을 소유해서, 아니 하나님을 소유해서 행복을 누리라고 말씀해주셨다(5:3). 행복에 관한 하나님의 하늘의 정의이다. 땅에 살고 있더라도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의 자랑거리를 붙들고 그것이 행복인 양 거짓된 삶을 살지 말고, 하늘의 행복을 누리며 하늘을 살라고 요구하신 것이다.

 

진정 그런 삶에 목말라하는 한 사람을 주님께서 여리고에서 만나셨다. 수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따르고 있었다. 그는 키가 작았기에 그들 속에 들어가면 주님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근처에 있는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19). 여리고를 방문했을 때 안내자가 그 때의 나무라며 소개해주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2천 년 전에 그 자리에 있던 나무가 내가 본 그런 크기의 나무로 그 자리에 있다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관장이요 부자인 삭개오가 체면 불구하고 올라갔던 뽕나무를 상징으로 보여주기엔 제법 그럴 듯한 나무처럼 보였다. 주님께선 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의 가난한 심령을 보셨다. 그가 주님을 자기 집에 초청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신 걸 보면 주님께서 그를 영적 세계로 초청하신 것이다. 그는 세관장으로 사회적 지위도 있었고, 부자였지만, 육적인 욕망과 육안의 욕망과 세상의 자랑으로 망가진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눈을 뜨고 오직 주님을 보고 싶어 했다. 주님께서 그의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언하셨다. 주님의 구원은 우리가 영안을 뜰 때만 볼 수가 있다. 자신의 육체의 욕망의 산물인 세상의 명예나 재물도 오직 영안이 밝아질 때만이 내려놓을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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