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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제가 올린 김요한 목사의 문창극씨에 관한 글을 오늘 교회 게시판에서 내렸습니다.
 
이번 주일에 우리 교회 장로님 한 분이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 교우 한 분이 그 장로님께 전화를 하셔서 제가 올렸던 글이 정치적인 성격의 글이므로 교회 게시판에서 삭제해줄 것을 요청하셨다면서, 이를 권고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요청을 하신 분이 누구신지 모릅니다. 그 분이 저에게 개인적으로 그런 요청을 하셨으면, 저도 교회 게시판이 정치적인 논쟁의 장이 되기를 원치 않기에, 그 분께 별도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서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습니다.
 
비록 정치적인 문제로부터 파생된 이슈였지만, 저의 의도는 문창극씨를 국무총리로 임명하는 것에 대한 찬반을 따지거나 현 정부를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문창극씨의 사회역사관이나 신앙관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 분이 청문회에 설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비리도 아니고 자신의 신념에 관한 문제이기에 이에 관해서 소신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제가 그 글을 올릴 당시, 워낙에 정치사회적인 영역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논란이 컸던 이슈였기에 이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물론, 그 글은 신앙적으로든 사회역사적으로든 문창극씨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고, 문씨를 현 정부가 임명하려했으니, 어쩔 수 없이 정치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래, 저희 취지에도 불구하고, 삭제를 요청하신 교우께서 그 글이 정치적인 문제로 느껴져서 불편하셨다면 유감스럽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관한 인간적인 판단은 저에게 늘 신앙적으로 의문이었습니다. 저는 세상만사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인형이나 로봇으로 여기시지 않는다는 믿음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양심과 이성과 감성과 의지를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순간순간 선택을 하며 살도록 하신 것도 우리에 대한 주님의 크나큰 사랑과 은혜라고 믿습니다.   
 
몇 해 전, 우리 교회 선한사마리아인 위원회가 교제하는 앤드류 서 (서승모)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날 같이 갔던 교우 한 분이 저에게 주님께서 앤드류 서를 구원하시려고 그를 감옥에 보내셨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앤드류 서는 누나의 약혼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판단하여 그 약혼자를 살해해서 80년 형을 선고받고 현재 21년째 복역중입니다. 그 살인을 사주한 누나, 캐서린은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993 9, 비내리던 그 날 오후 내내차고 한 귀퉁이에서 누나의 약혼자를 살해하기 위해 기다리며 몇시간 동안이나 죽음과도 같은 불안과 갈등을 겪었던 열아홉살 승모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합니다. 그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양심과 이성을 통해 경고를 주셨지요. 그래서 승모는 그토록 심한 불안과 갈등를 겪었겠지요. 그러나 그는 주님의 뜻과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이 비극적인 일의 발단은 조그마한 체구를 가진 어머니가 잔인하게 서른 네군데를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앤드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그의 어머님을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당하게 하시고, 그 후 앤드류로 하여금 살인을 저지르게 하시고, 이로 인해 80년 형을 선고받게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앤드류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주님은 설혹 앤드류와 그 가족이 그런 일을 겪지 않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구원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할 경우는 없을 테니까요.
 
그로 하여금 사람을 죽이고 80년 형을 받게 하고 감옥에 있게 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 열아홉살 그의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잘못된 선택 즉 큰 죄를 저지른 그를 포기하지 않고 그를 예수님 안에서 거듭나게하시고  주님의 사람으로 준비시키시고 계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집단으로서의 인류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저는 노예제, 식민주의, 전쟁, 학살, 고문, 극심한 빈부차이,차별 등 인간이 만들어 온 커다란 불행들이 주님의 직접적이고 정교한 계획하에 일어난 일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간들이 선택한 죄악들입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도 주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신다고 믿습니다.
 
한편, 그 교우께서 삭제를 요청하신 이유가 제가 올린 글이 정치적인글이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정치적인것일까요? ‘정치란 단어가 정당활동이나 투표행위 등에 국한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이락 전쟁에 찬성한다. 나는 반대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관심이 없다. 나는 정의로운 전쟁은 지지하지만 불의한 전쟁은 반대한다. 나는 모든 전쟁을 반대한다. 나는 좀 더 지켜보고 판단하겠다. 나는 다음 선거에서 투표로써 내 찬성 의견을 표출하겠다. 나는 찬성 투표 뿐만 아니라, 이락에 파견된 군인들에게 위문 편지를 보내겠다. 나는 다음 선거에서 반대 투표할 것이다. 나는 반대 투표 뿐만 아니라, 반전 집회에 참여하겠다. 나는 부시 대통령이 기도하면서 응답받아 결정한 전쟁이니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다. 나는 예수님께서 무력을 쓰는 자는 무력으로 망한다고 하셨으니 이런 전쟁에 반대하신다고 믿는다. 나는 다만, 군인들이나 민간인들에게 최소한의 희생만 있도록 기도하겠다. 나는 이에 대해 나의 영적 지도자에게 물어보겠다. 나는 기독교인들은 세상 일에는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상은 우리들 각자의 다양한 세계관과 지향을 반영하는 정치적인견해와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신론이 종교적인 견해이듯이, 정치적인 불신이나 무관심도 정치적인 입장의 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들의 삶에서 대부분의 경우, 순도 100%의 탈정치적인 것은 가능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00% 탈정치적인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를 위해 예약되어 있다.”는 단테의 말에 여지껏 공감합니다.
 
150년 전입니다. 버지니아에 담배 농장을 경영하는 주인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물론 둘 다 백인입니다. 그 당시 많은 농장주들이 그러했듯이, 그들도 수십명의 흑인 노예를 두고 있습니다. 성격이 좀 강팍한 남편은 흑인 노예들을 거칠게 다룹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도 나가는 그는 흑인들을 저주받은 햄족의 자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신실하게 믿음 생활하는 착한 아내가 있습니다. 마음씨가 비단결인 그녀는 흑인 노예들을 불쌍하게 여깁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남편으로부터 얻어맞은 흑인 노예들을 정성껏 치료해주고, 남편 모르게 때때로 그들에게 성경말씀도 들려주고 글도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그녀는 흑인 하녀가 차려주는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그들이 빨아서 다려주는 옷을 입고, 그들이 청소한 넓고 깨끗한 저택에서 삽니다. 흑인 노예들이 열심히 일한 덕택에 올해 담배 농사가 잘되어 큰 수확이 있었습니다. 물질적으로 모든 것이 풍족했습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 착하고 신실한 부인은 비록 흑인 노예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에 대해 가르쳐주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지만, 하루하루가 지옥의 나날이었을 흑인 노예들의 비참한 삶을 강요하고 있는 노예제도가 혁파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녀는 너무 급진적인,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서둘러 서툴게 지어낸 픽션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넌픽션입니다.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지만, 저는 솔직히 이착하고 신실한부인이 진짜로착하고 신실한사람이었다고 인정하는데 인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대의 아픔과 진실이 없는 선함과 신실함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적지 않은 수의 착하고 신실한 크리스찬들이 비록 개인적인 차원에서 아무리 이웃의 아픔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비인간적인 삶을 강요하는 잘못된 구조와 제도를 그냥 두고 있다면, 그리고 심지어 그 구조와 제도로부터 본의 아니게 혜택을 받고 있다면, 자기기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적인 것과 신앙적인 것을 너무나 쉽게 나눕니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세상적인 것에는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할 것처럼 가르칩니다. 정치적인 것과 신앙적인 것을 쉽게 구분합니다.과연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비정치적으로 (순수하게 신앙적으로만)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꼭 바람직할까요?
 
또 다른 서툰 픽션입니다. 80년 광주일 수도 있으니 철저히 넌픽션이기도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몇몇 교인들과 함께 새신자에게 심방가는 길입니다. 권력을 잡고자 총칼을 든 군인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교인들이 다치지 않도록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 새신자 집에 무사히 왔습니다. 모두들 조금 전 목격한 장면에 놀라면서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목사님은 교인들의 불안과 걱정을 추스르며 이럴 때일수록 혼란한 세상 일에 흔들리지 말고 각자와 이웃의 영혼 구원을 위해 더욱 신실하게 기도하자고 말씀하십니다. 며칠 후 주일에 몇몇 교회 청년들이 목사님께 그 사태에 대해 크리스찬들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말씀해 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며칠 전 새신자 집에서 하신 것과 같은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저는 이 목사님이 비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목사님은 정말로 순수한 의도에서 교인들이 세상 일에 휩쓸리지 말고 비정치적으로 신앙적으로 살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하얀 손으로 우리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우는,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그 잘못을 용인하고 온존케하는 정치적인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온전하게 비정치적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시대의 진실을 증거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입니다. 왜 흑인 목사님들 중에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분들이 많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인권과 평화 운동을  “정치활동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대에 개인이든 집단이든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주권 및 독립이라는 정치적인 명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고 생각합니다. 3.1 운동당시 민족대표 33인의 절반이 기독교 인사들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신 그 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 아니지요. 마찬가지로, 지금 북한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정치적인 자유를 획득하는 문제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미국에서도, 정교분리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전쟁, 낙태, 동성애, 총기, 세금, 복지, 빈곤, 환경, 의료정책, 교육, 줄기세포 연구, 이민정책 등 정치적인 주제들과와 종교가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적인 주제들, 그리고 사회경제적인 맥락을 모두 사상해버린 신앙은 관념적이라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은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해 기도했고, 적지않은 수의 다른 크리스찬들은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많은 보수적인 기독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막고자 비록 몰몬교 신자이지만 보수적인 롬니 후보의 당선을 위해 기도했고, 적지 않은 수의 리버럴한 크리스찬들은 오마바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박근혜 후보나 롬니 후보를 지지할 근거를 찾자면 열가지도 넘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문재인 후보나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할 근거를 찾아도 그 만큼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은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 두 진영 중 어느 쪽의 기도를 들어주시거나, 특정한 후보를 지지하라는 명령을 내리실 리는 없다고 믿습니다. 각자가 심사숙고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맞는 정책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후보나 정당을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이를 위해 기도할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뜻이 특정 후보의 당선에 있다거나,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은 자기 또는 자기와 같은 신앙집단의 바램을 신에게 투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한국 기독교는 정치사회적으로, 또는 사회경제적으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있고, 오랜 기간 서로 간에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요즘 미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같은 주님의 말씀을 읽는데도 많은 주제들에 대해 서로 생각이 다릅니다. 같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데도, 보수와 진보는 많이 다릅니다. 그래, 저는 목회자이든 평신도이든 각자의 성장배경, 경험, 사회경제적 기반, 성격, 그리고 문제의식에 따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달리 해석할 개연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참 뜻을 헤아리기 위해 기도하고 묵상하고 실천해야겠지요. 그리고, 아마도, 주님께서는 우리들 서로가 내세우는 입장과 견해, 단순화시켜서 보수의 덕목들과 진보의 가치들이, 둘 다 모두 필요하기에,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말씀을 다르게 해석하고 실천하도록 하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가, 내심, 상대방에 대해서, 결국은네가 예수를 믿는 방법은 틀렸다. 너는 예수를 제대로 믿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정하고 서로를 불신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만해도, 부시 전 대통령이 바이블 스터디를 열심히 했다고 하지만, 그가 성경을 제대로 읽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서로가 애정을 가지고, 삶을 특히 예수를 믿는 삶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선한사마리아인 위원회 사역을 오래 해오신 존경하는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 그리고 집사님들이 저처럼 리버럴한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외람되지만, 제가 보기에 보수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들이예수를 믿고있다는데 조금의 의심도 없이 존경합니다.
 
한국 교회도, 미국 기독교인들도 이렇게 삶을 통해서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기를 기도합니다. 생각이 깊지 않아 글이 장황해졌습니다. 널리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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