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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06):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요동치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
우리 사람의 일상 중에 그 마음과 생각을 요동치게 만드는 오직 한 가지 요소가 무엇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크고 강한 어떤 감정의 기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든 어른이든 여자든 남자든 사람이라면, 누구든 무엇을 보면, 혹은 누구를 만나거나 사귀면 반드시 ‘좋다.’ 혹은 ‘좋지 않다.’ 이렇게 나누어 말하거나 직설적으로 ‘싫다.’ 혹은 ‘나쁘다.’고 말하면서 욕설이나 분노마저 표출하는 경우를 쉽게 만나게 된다. 이런 현상들이 마치 실에 바늘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에 세상은 조용할 날이 없고, 세상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물론 사람이 어떤 사물을 대하고 나서 즉각적으로 혹은 단순히 조금 후라도 나타나는 여러 가지 반응 중의 하나일 수 있지만, 그 지식의 원형이 곧 ‘좋다.’와 ‘좋지 않다.’를 분별, 혹은 구분하는 건 바로 하나님께서 죽음의 경고로 금하신 ‘선악의 지식’이란 점에서 인류 최초, 최악의 불순종의 대가이다.
‘선악의 지식’은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래 창조주 하나님만의 것으로 그분만이 행사할 지식이었는데, 그것을 최초에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에게 금단의 지식으로 선포하시고, 죽음의 경고로 금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첫 사람은 목숨을 담보로 죽어도 좋다고 각오한 듯 불순종하며 그 지식을 자신의 것인 양 누리게 되면서 모든 인류가 동일하게 에덴에서부터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바로 한 가지 선악의 지식이 시도 때도 없이 인간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다. 자기 생각에 좋은 것은 그대로 좋지만, 좋지 않은 것, 정확히는 그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엔 분노를 발한다. 결국 인간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좋지 않은 양면에 반응하되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선 분노를 발하고, 그로 인해 미움과 싸움이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좋다 해서 다른 사람도 똑같이 좋다고 말할 수 없기에, 혹은 한 사람이 좋지 않다 해서 다른 사람도 그와 동의할 수 없을 경우에 분노가 일고 다툼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등장하는 ‘마음과 생각’이란 말의 영어 표현은 대체로 ‘heart 와 mind’로 영역돼 있는데 그 의미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로 한정시키고 있다(빌4:7). 대개 가슴에서 나오는 감정과 머리에서 나오는 이성적인 생각을 그렇게 나누어서 표현한 것이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모두 선한 것이 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의 경우라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내 마음 나도 모른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들으면서, 그들의 마음이나 생각에서 나오는 말의 정직성이나 정확성을 누가 보장하겠는가,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만큼 천차만별, 그래서 종잡을 수 없이 좌충우돌의 진원지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라야 제 자리를 찾아갈 수가 있다.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에덴의 동편으로 쫓겨난 뒤, 그들에게서 태어난 가인과 아벨 형제 사이에서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 일어나지만, 범죄 한 인간의 원형으로서의 그의 마음과 생각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적대 감정에서 비롯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한 가정에서 부모를 미워하는 형이나 동생이 있다면, 형이든 동생이든 부모를 미워하는 자가 동생이나 형을 미워하게 된다. 야곱의 열두 형들이 요셉을 미워해서 그를 죽이려다가 큰 형 르우벤의 만류로 물 없는 웅덩이에 빠뜨렸다가 그를 건져내어 돈을 받고 이집트로 가는 장사꾼들에게 그를 팔아넘겼지만, 요셉을 편애한다고 생각한 형들이 아버지를 미워한 나머지 혈육인 요셉을 죽여 없애버릴 만큼 미워했던 것을 보더라도 형제간의 불화가 바로 아버지의 긍휼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출발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한 마음과 생각이 결국 온 인류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죽음에 처하게 된 비극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