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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삶과 생각 모닥불 앞에서 타오르는 낱말들 12
1. 반찬 없이 먹는 밤참들
여기저기서 주워 온 불쏘시개를 한곳에 모아 모닥불을 피운 후엔 그 붉게 타는 불꽃 밑에 자리 잡은 잿더미 속에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을 묻어서 조심스럽게, 살피며 타지 않도록 익힌 다음엔 잘 익었는지를 확인하는 사람이 먼저 어느 하나를 꺼내어 자기 입에 넣지 않고, 옆에 다른 사람에게 먹어보라고 말하는 착한 마음, 아니 엄마 같은 마음을 볼 수가 있다. 따뜻한 그 사람 마음의 정성 때문일까, 먼저 먹어 본 사람이 잘 익었다고 웃으며 말한다. 묵은김치나 오이소박이가 있으면 훨씬 맛이 있을 것 같다는 말도 꺼내지 않는다. 사치스러운 생각일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말을 취소한 것이다. 반찬 없는 그 한 가지 밤참만으로 만족하겠단다.
어느 한 사람이 별빛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오늘의 모닥불이 땅 아닌 하늘에서 왔다고 말한다. 불을 단지 조그마한 모닥불이고, 어쩌면 자꾸 꺼질 것처럼 약한 불꽃이지만, 그래도 불은 하늘의 소산이고, 불 속에 자리 잡고 누워있는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은 땅에서 왔으니 하늘과 땅의 소산이 불 속에서 서로 만나 맛있는 밤참을 만들어 모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라는 희망을 보여준다.
불이 나온 하늘은 땅에서 얼마나 먼 곳에 자리 잡고 있는가? 땅은 하늘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하지만, 그 거리를 측정하려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다. 땅과 하늘을 서로 조금도 거리를 둘 수가 없다. 평생 서로 안고, 서로 붙잡고 어울려 있어야 한다. 0.1밀리라도 땅이 하늘과 떨어져 있으면, 땅은 살지 못한다. 땅은 하늘과 연결돼 있어야 생명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땅이 죽으면 하늘의 생명이 땅으로 흐르지 못한다. 그 어떤 것도 하늘과 단절된 땅에서 생명을 살아갈 수가 없다.
하늘은 둘째 날에 지음 받았다. 물과 물 사이에서 궁창, 곧 하늘을 하나님께서 펼치셨다(창1:6-8). 그리고 물을 한곳으로 모이게 하시고, 물과 물 사이에서 뭍이 드러나게 하셨다. 땅, 곧 지구의 창조이다. 땅과 더불어 창조된 것이 바다이다. 물과 물 사이에서 위로 하늘이, 물과 물을 한곳으로 모아 땅을 드러내서 지구를 지으셨다.
어찌 보면 하늘과 지구의 생성은 그 모태가 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물이라는 생명질서가 하늘과 땅 사이에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하늘과 땅이 만난 셋째 날에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가 생성되게 하셨다.
그렇다. 창조의 셋째 날에 이뤄진 생명체의 출현은 하늘과 땅의 만남에 의한 선물이다. 이처럼 땅은 하늘을 만나서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운명체이다.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통해 하늘의 커다란 품에 안겨 살아가고 있는 걸 알 수가 있다. 하늘과 땅이 운명공동체임을 부정할 수 없다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하늘과 땅에 연결된 생명의 흐름 속에 더불어 연결돼 살아가게 돼 있다는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가 없다. 우리 인간은 결국 하늘과 땅을 동시에 살아가는 터전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는 존재이다. 비록 반찬도 없이, 입가에 검은 숯가루를 묻혀가며 고구마, 감자, 옥수수를 먹으며 기쁨을 나누는 동안에도 하늘과 땅을 동시에 경험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