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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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벗이 있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꽉차오는 벗이 있었습니다.

만나게되면 짧은 만남이라도 좋을, 아무말이 없어도 좋을, 아니 차라리 아무말없이

다만 소년의 미소를 나누기만 해도 좋을 벗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볼일보러 왔다가 들리는게 아니라, 일부러 먼길, 이 먼나라 형무소까지 친구보러

찾아오는 몇 안되는 친구중 하나였습니다.

팽이치기, 구슬치기, 다방구를 하며 놀던 어린시절 우리는 여름 성경학교도 열심히 다녔습니다.

개근상을 받으러.  머리통이 조금씩 굵어지고 여학생 꽁무니를 킬킬거리며 쫓아다니기 시작했을때도

늘함께 다니며 그래도 교회는 열심히 나갔습니다. 교회에도 여학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맨뒷자리에 앉아 기도시간에도 히히덕거리며 단 한번도 진지해 본 적이 없지만 여전히 교회는 열심히

출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권사님, 집사님들을 비롯한 교회 어른들은 우리들이 매우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인줄 알고 계셨습니다.

머리가 더커져 대학에 들어가서는 죽어라고 같이 술마시러 다녔습니다. 현실에 분노해서 마시고, 

외로워서 마시고, 어떠한 이유를 만들건  술을 거르지않고 꼭 마셨습니다. 안주는 거의 없었지만 여유가

생기면 찌개나 오뎅국물도 시키곤 했습니다. 하루라도 안 마시면 큰일 나는줄알고 목숨걸고 마셨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안 마시는 날이 하루 있었는데 고등부 성가연습 시키는 날이었습니다. 기특(?)하게도

그 당시 개척교회 성가대 지휘를 맡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군대에 갔던 친구들이 하나둘 나와 제대, 복학, 또 졸업하는라 바빠졌습니다. 취직도 하고

먹고 살라고 저마다 정신없이 헉헉대기 시작했습니다. 저 자신도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들의 술인생이 마감돤것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술마시는 핑계가 조금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서로 떨어져 있어서 마시는 장소만 바뀌었을뿐 여전히 각자 술마시는 일에 분발했습니다.

그친구는 한국에서 저는 동경에서, 매일저녁 술마시는일이 가장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술마시는 상대가 누구건 그건 그리 중요한일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마셨습니다. 그러니 불쌍한것은

우리의 육체였습니다. 한참 젊고 보배같은 우리의 육체는 이미 술에 찌들어 망가져가고 있었습니다.

한국인인 저는 일본에서 미국회사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술마시는 이유는 사업상(?)이었습니다. 

안마시면 일이 안된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혼자만, 물론 술한방울도 안마시고 일하는 사람들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어쨌던 그러는 사이 저는 아내도 생기고 헤어지고 또 생기고 자랑처럼 아들도 생겼지만,

이 친구는 여전히 술하고만 친하게 지냈습니다. 여러친구들이 장가가라고 닥달하고 신부감도 소개해주었지만

마누라가 생기면 자신의 술인생에 착오가 생긴다고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귀국한 어느날 갑자기

참한여자 하나를 데리고와 소개를 시켜주었습니다. 결혼할 여자라면서. 무섭게 춥던 어느 1월, 웨딩화보

사진을 찍으러 양수리의 어느 사진스튜디오로 두사람을 뒷자석에 태우고 갔습니다. 가다보니 눈이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투덜거렸습니다. 결혼하라고 그렇게 닥달할 때는 콧방귀도 안뀌다 하필이면

좋은날 다 놔두고 엄동설한에 결혼을 하냐고, 그리고 서울에 사진 스튜디오가 없어서 양수리까지 가냐고,

오면서도 투덜거렸습니다. 두사람이야 히히덕거리며 사진 찍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겠지만 나는 하루종일

지루하게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밤이 되어 돌아오는 길은 꽁꽁얼어 빙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썰매타며 돌아왔지만 내심은 흐뭇했습니다. 장가 안갈줄 알았는데 늦게라도 가니 얼마나 다행이었겠습니까?

그것도 이쁘고 참한 색씨하고 가니 말입니다.

제가 감옥에 갇히고도 이 먼길 마다하고 찾아와 위로도 해주고 꼬박꼬박 편지, 연하장 보내주며 건강 

걱정해주던 친구였습니다. 이친구는 제가 주님의 종이 되었다는 사실을 신기해 하긴해도 못믿는 눈치였습니다.

올해는 연하장 대신 부고가 왔습니다. 인성이 지난 12월17일 새벽 1시15분 세상떠났다고. 간암치료 받는다는

소식 들은지 얼마 안됐는데, 이렇게 빨리 갈줄 몰랐습니다. 덩치도 산만큼 크고 늘 허허웃던 마음씨도 무지좋은

제 베스트 프랜드 였습니다. 투병소식듣고 힘내라고 장문의 편지를 쓰고 있었는데. 

기적은 기적을 믿는 사람들한테만 오니까 너도 믿으라고, 나도 열심히 기도하고 있으니까 걱정말라고,

나는 그동안 하나님하고 많이 친해졌기 때문에 내 기도 들어주실거라고, 그러니 힘내라고...

내편지 받아보기도 전에 친구는 하늘나라 갔습니다.

착한 친구는 이름이 어질仁에 이룰成 이인성이었습니다. 늦장가 간 덕택에 아들이 아직도 어립니다.

제가 미국들어오기 바로전에 백일 잔치했으니 아직 초등학생일텐데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인성이느 정확히

저보다 9년 더 술마셨습니다. 제가 갇힌지 정확히 9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9년이 인성이를 먼저 보냈습니다.

올해는 절대로 하나님께 따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한번 더 따져봐야 겠습니다. 다른녀석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그렇게 착하고 욕도 할줄 모르는 선한 인성이를 먼저 데려가셨냐고. 하나님 성격 정말 이상하시다고.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술좋아하던 인성이는 지금쯤 하늘나라 

포도주 창고에서 술냄새 맡으며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마음씨 좋던 인성이는 마지막가는 영정속에서도 허허하고 웃고 있었답니다.

Good bye my friend! 장례식날 못가서 미안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의 삶을 마무리하고 떠날때 그들은 믿음을 남깁니다. 못다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있는 삶을 주리라는 믿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주리라는 믿음...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득한 새해 기원합니다.

이 ㅇ ㅇ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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