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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52): 은총의 시간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1:1).’ 천지를 창조하신 ‘태초’가 곧 시간의 창조라는 전반적인 선언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의 모든 우주 만물을 ‘시간’ 안에 두셨다는 선언이다. 모든 생명체는 물론이고, 무생물도 시간 속에 넣어두셨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을 모두 시간 속에 넣어두셨지만, 시간을 벗어나 영원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오직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다. 때문에 인간에게 모든 유한한 것들을 맡기셔서 그들을 다스리고 보호하고 가꾸도록 힘을 실어주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로 있게 하신 그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손수 빚어 만드셨고, 하나님과 영적 교류가 가능하도록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영혼을 불어 넣으셨다. 사람만이 시간을 초월해 영원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다시 말하지만, 시간은 모든 피조물을 그 안에 담을 수 있다. 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지만, 그 안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모두 담을 수 있을 만큼 큰 그릇임엔 틀림이 없다. 물론 육체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그 안에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안에서 살아간다. 그렇다. 인간은 죄로 인해 유한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 시간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구원을 받아 누리는 사람은 시간 속에서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실습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그 모양을 닮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중의 특권이다.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영원한 생명을 담지 못한다.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담을 수 없다. 생명은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영원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단지 생명이 잠시 머무르는 순간일 뿐, 생명 그 자체는 아니다. 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는 한계 속에 있다. 시간 속에 있는 수명은 생명의 본체는 아니다. 사람들의 삶이 있기 전에 생명이 있었다. 생명이 있었기에 생명체로 지음 받을 수가 있었다. 고로 생명은 영원하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의 원천이시다. 사람들이 시간 속에서 유한한 생명을 살아가는 것이 지상의 삶이다. 삶 속에서 웃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다는 것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시간 속에서의 삶이란 뜻이다.
우리 사람이나 모든 피조물들만이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도 시간 속에 사시면서 웃기도 하시고 울기도 하시며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신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더불어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를 속속들이 기록하고 있다. 사람이 범죄하고 에덴에서 쫓겨났지만, 하나님께서도 사람과 더불어 세상으로 나오셨다. 우리 모두의 고난과 슬픔을 모두 겪으셨다. 물론 지금도 우리와 함께 성령으로 존재하시며 우리의 희로애락을 모두 체험하며 살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오신 모든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의 시간이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은총의 시간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누리며 살고 있다. 은총의 시간을 누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구원 받은 은총에 관한 감사가 우선되어야 한다. 단지 코로 숨 쉬고 먹고 마시면서 생명을 유지하는 수명을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영원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영혼을 소유한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지 시간에 붙들려 시간 속에 있는 것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런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하지만, 생명 얻은 믿음은 반드시 시간 속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하늘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시간의 한계를 초월해서 영원한 것을 실상으로 바라본 사람만이 믿음의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 있는 걸 볼 수 있다(히11). 온갖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시간 속에서 누리는 은총의 삶이 곧 믿음의 삶이다. 시간을 영원으로 바꿔서 살아가게 하는 힘,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은총의 시간을 누리는 믿음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