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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54): 한 곳을 향에 한 배에 올라탄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
벌써 5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여고생들을 인솔해 부산-제주 간의 연락선을 타고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제주도로 갈 때는 괜찮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귀향길엔 배가 심상치 않게 요동을 쳤다.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헝클어진 머리와 한얀 교복은 그들이 토해낸 오물들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그런 것에 신경을 쓰고 옷맵시를 추스르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살려달라는 외침뿐이었다. 그들을 인솔하는 교사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학생들과 대동소이할 뿐,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죽겠다고, 또 살려달라는 외침으로 학생들은 모두 고난의 공동체가 된 것 같았다. 서로 간에 체면치례도, 갈등도 없었고, 각자가 갖고 있는 자존심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차라리 배가 파선돼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살아남기가 힘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터.
나는 오늘 단 네 줄의 성경 본문(눅8:22-25)을 통한 새벽 강단의 목소리에서 주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닥친 풍랑을 일컬어 항해하는 인생들에게 ‘은혜의 풍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 감사하며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었다.
그렇다. 태양에 세 번째로 가까운 지구라는 조그마한 행성을 타고 모든 사람들이 밑도 끝도 없는 광활한 하늘을 항해하고 있는 공동체가 바로 우리 모두 인류가 아닌가? 그러나 지구촌 사람들은 오늘도 여전히 탐욕이란 무기를 이용해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있다. 이들이 모두 하나 돼 같이 울고 같이 웃는 공동체 의식은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까?
그렇다. 공동체 의식은 아무 일이 없는 평안 때에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다 같이 어떤 공통적인 위기나 아픔에 직면해 있을 때 공동의 대체의식이 솟아나오는 것을 본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기쁨의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40년간의 광야생활 중에도 철저히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지만, 그들 공동체가 하나님의 배제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다가 일세대가 모두 모래 속에 묻힌 비극을 겪었다. 누가복음 8장에 기록된 주님과 더불어 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중에 갑자기 일어난 풍랑으로 제자들이 주무시는 주님을 제외시키고 그들만의 ‘우리’가 죽음의 위기 속에서 허둥댄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 자신들과 함께 계시는 주님이 자신들을 외면하고 주무시는 듯, 혹은 주님과 한 배를 탔지만, 자신들만이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듯 아우성을 치다가 주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린 것을 보게 된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한 순간에 믿음을 접고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울부짖은 행위는 주님 없는 공동체 의식이 얼마나 허상인지를 보여준다. 주님께선 제자들에게 진정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기를 바라셨다. ‘바람과 성난 물결을 꾸짖으시니’ 바람과 물결이 잔잔해졌다(눅8:24). 그들이 위기 속에서 ‘선생님, 선생님’,급히 불렀지만, 주님은 단지 자신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알기를 바라셨다.
주님께선 오늘의 상황 가운데서도 무언가를 해결해주고, 혹은 낫게 해주시는 단지 선생이나 의사의 신분이 아니라, 온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믿고 의지하기를 바라신다. 때문에 금년 우리 교회의 표어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