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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이야기, 복음 이야기 1
<1> 기록된 복음의 첫 시작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1:1).’
위의 성경의 첫 구절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찾아본다면, 어느 단어를 지적할지 무척 궁금하다. 아무래도 복음의 주인공이신 하나님, 그분이 복음이셔야 마땅하지 않겠나 싶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으니 더구나 그분이 창조하신 어느 피조물도 복음이 될 수는 없다. 그 때문에 복음 중의 복음은 곧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하나님 이해가 곧 복음의 이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복음이신 하나님 없이는 천지가 존재할 수 없고, 온 우주 만물이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귀한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고, ‘나시기 전에 지으신 구주의 이름 예수’를 찬양하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복음의 주체인 하나님을 먼저 받아들여 이해하고,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 복음을 보다 인격적으로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지름길이라 생각되었다.
가.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이해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는 실제로 피조물인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창조주 하나님께는 이름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이성적이다. 하나님께 이름을 부여할 자가 있을 수 없으니 하나님의 이름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옳다. 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고유명사로서 이름이 있어도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녀가 있을 수 없듯이 어느 피조물이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고유명사를 부여할 수 있으며, 혹 이름이 있다 한들 누가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가 있는가?
오늘날엔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국 사회에선 외지에 나가 있는 아들이 자기 집의 아버지께 문안 편지를 보낼 때 봉투에 아버지의 고유명사를 적지 아니하고, 자기 이름 밑에 ‘본가입납(本家入納)’이라고 썼던 걸 기억하고 있다. 아들이 아버지께 편지를 올리면서도 아버지의 성함을 쓰지 못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설령 하나님께 고유 이름이 있더라도 그 이름을 누가 감히 입에 담을 수가 있겠는가?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이집트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서, 모세는 ‘이집트에 가면, 누가 나를 보내서 왔다고 말할까요?’,라고 여쭈었을 때, 하나님께선 ‘내가 누구냐고? 나는 나야(I am that I am)’라고 말씀하셨을 때, 히브리어로는 네 개의 자음만 있고, 원래 모음이 없었을 때라서 정확한 발음을 누구도 할 수 없고, 또 하나님의 이름이라면 자신들의 입에 담을 수 없으니 아도나이, 곧 ‘주님’이란 말로 하나님의 호칭을 대체해 사용했다. 뒤에 모음을 붙여서 ‘야웨’라 표기를 해도 그대로 읽지 아니하고, ‘아도나이’로 읽었고, 히브리어의 네 글자 야웨를 영어 표기는 ‘IAM’혹은 ‘I am that I am’, 곧 ‘나’로 표기했다. 하나님의 이름은 자녀들 앞에서 ‘나’일 뿐이다. 모든 피조물 앞에서 하나님께선 자존자, 곧 ‘나’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