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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79): 신권(神權)보다 인권(人權)을 앞세우는 무지와 오만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인권을 뿌리째 뽑아버린 것이 바로 인권을 주장하는 이념주의자들의 자들의 폭거이다. 소위 인권을 내세워 인간의 주권을 펼치는 자들의 최대의 약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들은 원천적으로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그 정체성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알아도 마치 자신이 스스로 생겨난 것처럼 부정한다.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입을 벌려 인권 존중을 큰 소리로 외치고, 말끝마다 화성에서 온 외계인처럼 엉뚱한 소리에 극히 평범한 상식적인 사람들이 들어도 단 번에 질려버리고 만다.
그들은 남자라는 호칭도, 여자라는 호칭도 양성평등을 벗어나는 인권 유린이라고 반박한다. 옛날 한국 사랑방에서 인구에 회자되던 이런 농담이 있었다. 어느 한 사람을 찾으러 사랑방에 들린 심부름꾼이 문을 열고 휙 둘러보더니 군인들만 있는 것을 알고, ‘어 사람은 없네!’라고 농담 아닌 진담을 했다는 말이 소문으로 돌았다. 당시 군인은 군인일 뿐, 사람이 아니었다는 농담이었다.
그 때는 물론 누구도 그의 말에 욕설로 토를 달고, ‘군인은 사람이 아니야?’, 라고 항의하며 눈을 부릅뜨는 군인들이 별로 없었고, 그저 지나가는 농담으로 받아들여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다. 당시의 군인들은 보통 평민과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뜻이었을 뿐, 군인의 인권을 무시한 편견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인권을 돌본다는 것이 차별받는 약한 사람, 가난해서 부당하게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을 보호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또 남자를 우대하고 여자는 무시하는 그런 분명한 차별에 관한 관심을 갖고 개선해주려는 노력이 아니라, 애당초 사람의 사람됨을 떠나서 사람의 본질인 남자와 여자를 구분해 말하는 것조차 양성 평등을 차별하는 이념으로 삼고 자기들 마음대로 뜯어 고치려고 설쳐대는 폭거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지만, 중학교 때에 들은 교장선생님의 조례시의 훈계가 생각난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교훈이었다. 지금의 인권운동가들은 아예 사람을 떠나서 허상을 붙들고 누구와도 또 무엇과도 싸우려고 달려든다. 이제 학교에선 사람다움의 사람을 드러내 요구할 수도 없게 되었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한국시간으로 지난 12월11일, 조선일보 인터넷 판에 실린 뉴스를 보고 난 후이다. 인천시교육청이 내린 양성평등에 관한 지시 사항을 따라 여러 학교에서 교가 고치기에 분주한 행태의 뉴스를 보면서 너무나도 황당하다고 생각되었기에 이 글을 쓴다. 소위 그들의 관활 하에 있는 여학교 교가에 ‘예쁘다-늠름하다’,라든지, ‘정숙하다-단아하다’라든지 남학교에선 ‘건아’란 표현도 양성평등을 벗어나 어느 한 편을 강조하고 드러내는 것이니 교가를 고치라고 지시했고, 벌써 많은 학교들이 그 지시에 동조해서 고쳤다는 뉴스였다. 남녀를 구분해서 남자를 남자라고, 여자를 여자라고 말하며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그 특징을 드러내는 단어조차 양성평등에 위배된다고 남자를 남자답게, 여자를 여자답게 드러내는 형용사조차 쓰지 못하게 한다면, 도대체 사람의 호칭을 누가 조정할 수 있단 말인가? 어느 집에 아이가 태어나도 이제 성별을 구분해서 딸을 낳았다거나 아들을 낳았다거나 말할 수 없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학교를 찾아다니며 교훈이나 교가를 고치고 있는 자들조차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면 그들은 자기 집에 딸을 딸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들을 아들이라 부를 수 없고, 심지어 집에서 자기 아내를 여자라 부를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그들 이념주의자들의 오만 불순한 언행을 누가 어떻게 고쳐줄 수 있을까? 양성 평등의 의미조차 알지 못하면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지도자들이라니 진정 소가 웃을 일이 아닌가 싶다. 양성이 같아야 양성평등인가? 진정 동성애자들이 양성평등인가? 하나님께서 서로 다르게 지으셨기에 양성평등은 서로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남자는 남자 되게 하고, 여자는 여자 되게 해야 양성이 평등하고 다른 남녀가 사람이 되어 사람노릇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