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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74): 왜 자녀의 키가 부모보다 더 클까?
옛날부터 한국의 부모들과 자녀들이 나란히 서서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공식처럼 자녀들의 키가 부모들보다 큰 것을 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더구나 특히 딸들의 키가 엄마의 작은 키에 비해서 훨씬 더 큰 것을 보면, 왜 그럴까란 생각이 먼저 들기도 했다. 물론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거라고 상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런 현상이 더더욱 분명해지고,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늘 조금은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길에서 본 엄마와 딸의 키가 차이가 많이 난 것을 보면서 그저 이상하다란 생각보다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자신보다 큰 딸을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러러 보면서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게 바라보는 눈빛을 보았기 때문에 엄마가 우러러 보는 눈높이를 따라서 딸의 키가 더욱 더 자란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엄마의 사랑스러운 눈매와 정다운 목소리가 자녀를 키워주는 생수가 된 게 아닐까?
그렇다. 특히 엄마는 애당초 키가 작아도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작아지긴 해도 크지는 않을 테지만, 딸의 키가 자신보다 훨씬 큰 것을 보면서 자신의 키도 덩달아 크고 어느 정도 딸과 걸맞게 된 것처럼 느낄 뿐, 자신의 키가 작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자녀들의 키는 부모들의 사랑과 우러러 보는 자랑스러움으로 크고 또 크는 게 분명해 보인다.
자녀를 낳은 엄마의 아픔으로 그가 낳은 자녀는 성장하고, 키우는 아픔으로 낳은 그의 자녀는 자라고 또 자란다. 하지만, 부모는 결국 자녀가 잘 자라는 것으로 위로를 받으며 자신의 약함도, 자신의 작음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어느 엄마든 자신의 키가 딸보다 훨씬 작아도 그 딸과 손잡고 나들이는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아내의 키가 작다는 걸 흠잡던 남편조차 자녀들이 부모보다 크는 것을 보면 아내가 작은 것은 오히려 더욱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 부모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자녀는 그리 많지 않지만, 부모는 그저 자녀를 사랑함으로 존재한다.
‘자녀들아! 엄마 아빠보다 아무리 키가 크다고 해도 엄마나 아빠와 키 재기는 하지 말라.’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부모는 비록 육신의 키는 작을 수 있지만, 엄마 아빠의 생각의 키, 사랑의 키, 헌신의 키는 자녀들과의 키 재기는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만약 아직 부모보다 키가 작은 아이가, 부모와 키 재기를 하려고 덤빈다면, 엄마와 아빠의 키는 금방 아이보다 훨씬 작아지는 것을 볼 것이다. 엄마 아빠는 다리를 구부리거나 고개를 줄여서라도 자녀보다 작아지거나 낮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아이가 아빠와 씨름하려고 기를 쓰고 덤빈다고 해도 아빠는 결국 아이에게 넘어져 아이가 이겼다고 손들어 주게 마련이다.
하나님과 샅바를 차고 씨름해서 이겼다는 야곱, 어느 아버지가 아들과 씨름해서 자기 힘으로 이겼다고 승리의 쾌재를 부른단 말인가? 야곱이 자신이 이겼다고 큰 소리를 처도 아버지는 ‘그래 네가 이겼다.’라고 그의 손을 들어주신 것이다. 야곱은 환도 뼈의 이골로 절름거리면서도 속이는 자 야곱에서 하나님과 싸워 이겼다는 왕자라는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은 승리자로 다시 태어난 걸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일부로 야곱을 이기게 해서 그에게 힘을 실어주셨다.
어느 부모든 때로는 자신들의 현재의 성공을 내세워 자녀를 바보라며 꾸짖기도 하고, 마치 부모를 닮는 것이 성공인 양 자랑한다면, 자녀들은 거기서 성장을 멈춰버릴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부모는 아무리 성공해도 자녀들 앞에선 자신들이 성공을 내세워 나 혹은 우리를 따르라고 훈계해서는 안 된다. 부모는 언제까지라도 자녀들을 우러러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을 위해서 희생하거나 격려해주고 사랑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자녀를 과장하라는 뜻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어야 하고, 현재를 칭찬해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