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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292): 원형을 잃어버린 인간(2)
인간은 원형을 잃어버리면서 스스로 주인노릇 할 만큼 진화돼 계속 발전해 가는 모양새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부정하고 대신 진화론을 신봉하며 살아가면서 스스로 보다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음흉한 가식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에덴에서 잃어버린 원형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자신들의 현재보다 더더욱 나아지려고 애를 쓰는 걸 보면 오히려 진화가 멈춰버린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하나님의 원형으로부터 멀어져서 원형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게 돼버린 슬픈 현상을 보게 된다. 설령 알게 되더라도 일단 부정하는 것으로 진화돼 가는 자신들을 자랑하며 살아가고 현상을 언제든, 어디서든 보게 된다. 진화는 어디쯤에서 완성돼서 끝나는 경우가 없다. 진화에 끝이 있다면, 그것은 진화가 아니다. 고로 진화엔 실제로 완전함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원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언어가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 싶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시면서 어느 한 가지를 다른 것과 비교해서 상대적 평가를 내리신 적이 한 번도 없으셨다.
창조의 첫 날 빛을 지으시고, 맨 처음 하나님의 마음을 뜻을 밝히신 말씀이 '좋다(good).'라는 선언이었다(창1:4). 이 후 여섯 번을 계속에서 ‘좋다.’고 선언하셨지만, 마지막에 '매우 좋았다(very good).'고 끝맺음 하셨다. ‘매우 좋다.’는 표현은 ‘좋다’의 강조일 뿐, 다른 것과의 비교 우위를 말하는 표현이 아니었다. 온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일괄적으로 ‘좋다.’고 선언하셨을 뿐, '더 좋다(better).' 혹은 '가장 좋다(best).'라는 비교급이나 최상급의 표현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곧 원형만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원형은 더 나아지거나 가장 나아질 필요가 없는 완전함이다.
영어에서 'good'과 같은 원형을 ‘root’라고 말한다. 누가 어느 좋은 것을 가졌다고 말하면 나는 더 좋은 것을 가졌다고 말하고, 누가 더 좋은 것을 가졌다고 말하면, 나는 가장 좋은 것을 가졌다며 최상급을 사용해서 원형과 비교급을 깔아뭉개버려서 원형을 벗어나는 것이 더 좋은 것, 혹은 가장 좋은 것인 양 말하며 의기양양 가슴 펴고 자랑스럽게 살아간다.
‘good’ 곧 원형이 변하는 것이 ‘better’이고, 더더욱 변하는 것이 ‘best’이기 때문에 원래의 뿌리가 아니라, 원래의 뿌리를 밀어내고 더 나은 상태, 가장 종은 상태로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모든 사물이 원래의 뿌리에서 벗어나 과연 어디로 달려가서 더 좋은 것, 혹은 가장 좋은 것이 된단 말인가?
현재의 아름다운 꽃나무 혹은 들꽃의 뿌리가 달라지면, 지금의 그런 아름다운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 혹은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사람이나 모든 동물의 머리는 위에 있어도 모든 식물의 머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땅 속에 묻혀 있다. 모든 식물은 뿌리가 달라지면 종(種)이 달라진다. ‘그 종류대로’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바뀐다는 뜻이다. 지음 받은 ‘그 종류’에서 벗어나는 것이 원형을 잃는 것이다. 원형을 잃는 것이 사물의 타락이다.
그렇다. 매사에 다른 것 혹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우위를 점하려는 그런 삶 속에선 탐욕만이 늘어날 뿐, 결코 원형이나 만족이 있을 순 없다. 설령 내가 가장 좋다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실제론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 나보다 더 좋게 된 사람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내가 현재로 만족할 수 없으니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과도 무한 경쟁으로 계속해서 늘어나는 탐욕이 작동하면서 더더욱 커지게 강화되기 마련이다. 자기 자녀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되라고 밀어붙이는 부모들에게 다른 사람의 자녀들이 잘 되는 걸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오히려 시기하고 질투에 젖어 행복과는 담을 쌓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혹시 격려라는 바로 그 말 속에 탐욕을 부추기가 악이 들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