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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287): 행복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1)
긍정 혹은 적극적 언어가 행복을 만들 수 있나?
참 오랜만에 안식년을 맞아 집에 온 우리 아들 식구 내외, 딸네 네 식구, 우리 부부 그리고 우리 며느리의 언니네 식구들 넷, 이렇게 12명이 미시간 Murray Lake에 있는 호숫가 별장에서 편안하고 시원한 가운데서 모처럼 물놀이도 하고, 우리 아들이 준비한 플랜에 따라서 나 할아버지 팀과 할머니 팀으로 나눠서 매일매일 즐겁게 지내며 이른 아침에 1.8마일 된다는 동네를 거닐면서 새로운 꽃들이나 주변의 풍광을 핸드폰에 담으면서 ‘참 즐겁다.’ 혹은 ‘참 행복하다.’ 이렇게 생각하며 지내다가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휴가 중에 거하던 그 집 벽엔 누구의 글인지를 몰라도 ‘Be Happy!’라는 명령을 발하며 행복해지는 방법을 몇 가지 구호에 담아 나열해 놓은 포스트가 벽에 걸려 있는 걸 보았다. 물론 너무나 상식적이라서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포스터까지 만들어 강조한 걸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 묵상해 보기로 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이 'Think Positively!'란 구호였다. 적극적인 사고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외친 구호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어 접해본 구호가 아닐까 싶지만, 긍정적 혹은 적극적인 사고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은 과연 어디에 뿌리를 두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항상 엉뚱한 발상이 아닐까라 생각하고 있다.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긍정의 힘이 정말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듣기에 기분 좋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행복일 수는 없다. 아무튼 적극적인 사고를 일말의 의심조차 배제시켜 버리고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나는 항상 의문을 갖고 있다.
몸이 아픈데 아프지 않다고 말하면 아픔이 사라진단 말인가? 정직하게 아프면 아프고, 안 아프면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참말이고, 그런 참말에서 현재를 뒤집어 보면 오히려 행복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아픈 걸 안 아프다, 혹은 안 되는 것도 된다고 긍정적으로 말해야 행복해진다는 게 과연 가슴에 와 닿는 말인지 깊이 생각해 보자.
부정적인 말이나 표현이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고, 적극적인 사고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유일한 부정명령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거기에 순종했더라면 인간에게 죽음의 불행이 찾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다른 모든 과일은 허락되었지만, 유독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한 오직 하나의 부정명령을 불순종으로 자기 지식으로 삼아 감히 하나님과 ‘하나 되면서(창3:22)’ 거기서 불행을 떠안고 살아가는 어리석고 거짓된 지식인이 된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 어떤 지식을 소유해도 지식인이 아니라, 나발과 같은 바보이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도 자기 남편을 바보라고 말한 걸 보면 바보는 나발의 별명처럼 들리지만, 나발이 왕이 될 다윗을 알아보지 못한 어리석음이 바보짓일 수 있지만(삼상25), 아담이 선악의 지식을 얻게 되면서 하나님을 잃었기에 아담이 진정 바보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나님의 지음 받은 존재가 하나님을 부정해버리고, 선악의 지식으로 주인노릇하려는 것만큼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따먹지 말라’는 부정명령을 아담이 적극적으로 어기고 손을 벌려 과일을 따먹은 긍정적 행위로 인해 죽음이란 불행의 옷을 입고 살게 된 인간. 이러한 인간의 비극적 현실을 인간의 긍정적, 혹은 적극적 사고로 어떻게 바꿔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불행을 어떻게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단 말인가? 긍정적, 혹은 적극적 사고가 겉으로 힘이 있어 보이긴 해도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마술방망이는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긍정적 혹은 적극적 사고가 자신의 불행을 슬쩍 덮어버리려는 위선적인 눈가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