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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285): 심판의 종식과 무지개(2)
첫 아담 부부는 처음엔 옷을 입지 않았다. 마치 한 몸에서 태어난 쌍둥이와 같았다. 인간 본연의 모습이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남녀를 하나로 지으셨다는 걸 보여준 중요한 메시지이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는 죄 없는 자의 원래 모습이다. 불순종한 다음에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들을 가렸지만, 그것은 생명 없는 죽은 자의 몸짓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입히신 건 생명은 생명의 피의 옷, 곧 복음의 옷을 입어야 함을 미리 보여주신 것. 물론 사람이 옷을 입은 데는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남녀가 옷을 입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인식한 후에 남녀가 각각 다름을 가리는 행위로 나타났다. 사람의 옷은 몸의 다름에 따른 다른 모양의 옷이었다. 하나님과 단절된 후에 남녀가 나뉘어져서 서로의 다름을 남녀가 인식했다는 뜻이다. 인간이 몸에 걸친 옷은 하나님과 단절된 존재임을 증명하는 증표가 된 셈이다.
하나님의 가죽옷, 이것은 사람이 스스로 만든 옷으로 자신을 가릴 수 없고, 하나님께서 친히 지어 입혀주신 옷을 입어야 할 존재임을 알게 해준 증표이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 그로 인하여 서로 나누어진 인간은 하나님으로 옷 입어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 다름을 인식한 인류의 첫 사람 부부를 하나님께서 에덴의 동편으로 쫓아내시면서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혀 첫 은혜를 베푸셨다. 에덴에서 죽은 동물의 죽음은 그 죽음이 사람을 살리신 하나님의 긍휼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그 가죽옷은 곧 하나님의 은혜의 옷이다. 인간의 범죄로 땅마저 엉겅퀴와 가시가 돋아나게 되었으니 거기서 일하려면 나뭇잎을 걸치고선 일하기가 힘들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해 입히신 것이고, 가죽옷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구원 받은 자로 살아가라는 은혜의 증표라는 영적 의미가 깃들어 있는 특별한 옷이다.
노아가 방주에서 살아난 후에 포도원을 가꾸고 거기에서 난 소출로 포도주를 빚어 마신 후에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자다가 아들 함에게 수치를 보여준 것 때문에 노아가 자기 아들 함을 저주하면서 세 아들의 위치가 태어남에 의한 자연의 선후관계가 아니라, 아버지 노아의 결정으로 뒤바뀐 것을 보게 된다. 노아가 술에 취해 자신의 알몸을 드러낸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가죽옷을 스스로 벗어던진 행위와도 같다. 잘못은 오히려 함보다는 노아가 아닐까 싶지만, 함을 향한 저주와 그들 형제들의 선후가 뒤바뀐 현실을 하나님께선 일단 그대로 받아들이신 것처럼 보인다. 지금 세상에 나체촌이 존재하는 건 하나님께 공개적으로 반항하는 인간의 작태라 말할 수 있다. 인간들이 걸친 옷을 벗어버리고, 울타리를 친다고 해서 그것이 자유와 평화의 동산 에덴이 될 수는 없다. 노아가 술에 취해 자다가 자녀들에게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내서 결국 그 수치로 인해 셈과 함과 야벳이란 형제의 가정이 나누어지면서 형제사이가 마치 주인과 종의 관계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노아는 자신의 수치를 자녀들에게 전가시켜 마치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그들이 하나님과 나누어지고, 그들 부부, 곧 남편과 아내가 나누어진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록 인종분리나 피부색깔로 인한 종족의 나누어짐이 인간의 불평등을 유발한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갈라놓으신 것처럼 일부로 갈등을 조장하면서 잘못이 하나님의 탓인 양 몰아가는 경향도 있고,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창조를 불완전으로 몰아 결국 오늘의 인종분리와 갈등의 원인인 양 하나님을 비난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나누심엔 뜻이 있다. 인간이 서로 나누어짐은 한 부부에게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으로 인간의 운명이 파멸되지 않았다. 하나님께로 불러들여 구원으로 하나 되게 하실 뜻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부부일지라도 각자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아닌 것이 곧 나누어짐의 시작이니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과 나누어지면 개인도 가정도 종족도 나누어진다. 하지만 다르게 나누어진 것조차 서로를 하나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조치이다. 그렇다. 무지개는 단지 심판의 종식이 아니라, 갈라진 인류를 하나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증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