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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5): 십계명의 서두를 묵상하며<3>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그분의 약속이신 성령강림 등 하나님께서 베푸신 일관된 은혜로 인해 죄의 종에서 해방돼 자유인이 된 크리스천들만의 삶의 공동체, 너와 내가 함께 들어 있는 그 생명의 커뮤니티가 곧 하나님의 교회이다. 물론 교회 안에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마치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이방인들도 그들 가운데 섞여 따라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순종해야만 진정한 크리스천 커뮤니티의 일원, 곧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가 된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십계명은 오늘의 교회를 커뮤니티 속에 하나로 묶으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의 일환이었다.
사실 이스라엘은 그 동안 하나님의 커뮤니티 속에 부름을 받고 그 안에 살면서 그 커뮤니티에 걸맞은 사람들로 다듬어져야 했지만, 그들이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나 자행자지하며 스스로 주인 노릇, 하나님 노릇으로 결국 하나님께서 이집트로부터 해방시켜 안겨주셨던 자유를 잃고 광야를 헤맨 기간이 무려 40년이었다. 그들의 광야 생활 40년은 자유를 잃은 자, 삶의 방향을 잃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했던 길 잃은 자들의 방황이었다. 물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그들의 불신은 계속되었지만, 그들의 불신이 결국 이방인 우리를 불러들여서 하나님의 커뮤니티 안에 편입시켜주신 은혜로 나타난 걸 볼 수 있다.
오늘의 교회도 물론 광야 가운데 홀로 남은 약하고 어린 자처럼 수많은 고난 가운데 처해있을지라도 목자를 떠나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는 길 잃은 어리석은 양들이 될 수는 없다. 어디서 길을 잃으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라는 말이 있질 않은가? 우리의 처음이 어디인가? 십계명의 서두가 이스라엘의 자유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오늘의 크리스천들에게도 자유를 얻은 구원이 바로 각자에게 시작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받아들인 그 날 그 순간이 확실치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신이 죄에서 해방된 구원의 순간을 되찾아 단단히 붙들고 바로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강도가 십자가에 달려 구원 받은 ‘오늘’이 생명의 자유가 시작된 바로 영원의 하루였듯이 그 날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비우고 다시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붙잡고 자유인의 신분을 회복하는 것만이 살길이다. 그 날이 언제든 ‘오늘’이고, 영원한 현재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고, 가정과 이웃과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된 날이다. 그 날이 바로 나와 네가 커뮤니티를 새롭게 정립하는 자유의 날이다.
열 가지의 십계명이든 모세의 오경 전체에 기록된 율법이든 그 모든 율법이 자유인의 삶이 어떠해야 함을 가르치기 위한 것임을 안다면,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에 붙잡혀 자유를 잃지 않는다면, 그 어떤 율법 조항이 자유인의 신분을 앗아갈 수가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율법 조항을 지켜서 자유를 회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새 언약의 알파와 오메가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옛 언약을 알고서도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애당초 율법을 알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살았던 이방인들에게 동일하게 기회를 주신 것이 곧 새 언약인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을 믿고 순종하면 누구라도 자유인의 신분을 갖는다. 또한 옛 언약만을 붙들고 있다가 하나님의 생명을 잃었던 사람들도 다시 생명을 회복할 수가 있다. 그 생명을 회복하는 자가 자유인이다. 그 자유인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았던 것처럼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에 사로잡혀 죄의 노예로 살았던 과거를 받아들여 새 언약으로 인한 자유를 갈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십계명에서 배워야 할 하나님의 뜻이 바로 이것이다<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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