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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7): 진정 공평한 세상이 가능할까?<2>
내가 아무리 세상은 결코 공평해질 수 없다고 강조해도, 조금이라도 공평해지를 바라는 사람들이 어디든 반드시 있다고 생각되니 그 사실을 모르는 척 그대로 덮어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같은 주제의 글을 다시 이어가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공평을 이념으로 삼아 정치도 하고 권력도 움켜쥐고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전혀 공평하지 않은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것만큼 희극적 상황, 아니 비극적 상황이 어디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자랑하고, 또 다른 사람은 흙수저를 물고 나왔다고 태어남의 불공평을 한탄하며 산다. 우선 그런 불평이 과연 타당한지 묻고 싶다. 물속에서 자라고 물속에서 꽃피는 연꽃이 집안 울타리 옆에서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피는 봄의 전령 개나리와 비교해서 자신의 처지가 공평치 않다고 불평하던가? 개나리가 연꽃과 자신을 비교해 물을 떠나있는 자신의 처지가 공평치 않다며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는가? 소위 자연은 지음 받은 그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종류대로(창1:24)’의 본 모습을 지니고 자신과 다른 것들과 더불어 땅과 하늘을 아름답게 살고 있다. 습지와 나무와 숲이 잘 살아야 사람도 산소를 마시며 살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지음 받은 그 모습 그대로를 각각 유지하는 것이 다른 것들과 같아지거나 공평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한 존재이다. 서로 달라야 각 개인이 자신을 유지할 수 있고, 그렇게 다른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주어진 삶을 잘 살면서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삶이 아닌가? 자신의 삶이 남에게,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선 모두가 동일하고 공평해서는 안 된다. 높은 곳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공평하기 위해서 위로 치솟아 올라가는 폭포의 물줄기를 본 적이 있는가?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격언 하나 만들어, ‘공평의 반대말은 불공평이 아니다.’라고 선언해 두고 싶다. 공평의 반대말은 존재치 않는다. 공평이 존재치 않으니 불공평이 존재치 않는 게 당연하다. 다만 서로가 이웃으로 도우며 살기위한 서로의 다름이 곧 각자 개개인의 독특성일 뿐이다. 서로의 다름이 곧 하나님의 창조질서란 사실이 모든 다름의 이유이다.
요즈음엔 누구라도 특별히 공평을 소리 높이 외치기만 하면 갑자기 신분상승이 되는 듯 사회운동가가 되고, 진보주의자가 되고, 정신이 온전한 깨어있는 자가 되고, 거기에 권력자의 눈에 띄면 권력도 손에 넣을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진정 공평을 부르짖는 자들이 원하는 것은 공평이 아니다. 모두가 공평해질 수 없다는 사실은 그들이 먼저 안다. 다만 공평의 구호로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단지 위선의 행위일 뿐이다. 실제로 공평을 원하는 자들은 남들과 공평하기를 원치 않는다. 자신은 그저 남들을 공평하게 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임을 드려내려 할 뿐이다. 언행일체가 모두 거짓이요, 정치적 속임수이다.
어째서 너와 내가 각각 달라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라. 만약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똑같다면 너와 나, 둘 중 하나는 없어도 상관없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서 너와 네가 다르지 않으면, 아니 모두가 소위 공평하게 동일하면 너는 사라지고 세상 천지에 오직 나만 존재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저 자나 깨나 나, 나, 나,,, 이렇게 끝없이 나만 외치면, 결국 나의 메아리만 뒤따를 뿐, 너와 함께 사는 커뮤니티는 그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 너와 내가 공평하기를 외쳤는데 결국 나만 홀로 남아 있는 외톨이 신세임을 발견하게 될 터. 너와 내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삶이 사라져버린다. 네가 없으면 모든 것을 나 홀로 나를 채워야 한다. 모두가 자신만을 채우는 세상, 진정 살만한 세상이겠는가? 소위 ‘동무’라는 호칭으로 공평을 표방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를 선언한지 오래되었다. 이미 구부러진 잣대로 어찌 ‘동무’를 만들고 공평을 만들겠는가? 하나님께서 모두 다르게 지으신 걸 누가 공평하게 만든단 말인가?<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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