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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217): ‘믿을 만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오직 한 마디!’
바울이 격려의 말을 전하면서 한 마디로 요약한 그가 전한 복음의 머리글이 과연 무엇이며, 그 한 마디는 과연 무엇을 말하기 위함일까? 과연 어떤 화려한 문장이며, 다른 모든 말을 다 잊더라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그 ‘믿을 만 하고 값어치 있는 오직 한 마디’가 바울이 전한 명언이라면 그 명언 중 하나가 과연 무엇일까? 세상엔 인구에 회자되는 수없이 많은 명언들이 즐비하지 않은가? 가슴이 찡하는 감동의 언어도 있고, 새콤달콤한 듣기 좋은 사랑의 명언들도 부지기수가 아닌가? 하지만 바울의 입을 통해서 전달된 그 값진 명언 중의 명언 한 마디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면, 혹시 실망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더구나 바울이 자신의 영적 아들이라고 부른 젊은 목회자 디모데나 디도에게 한 말이라서 그들의 목회가 바울의 그 한 마디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단지 목회자 디모데나 디도의 개인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양들을 치는 목자로서 목회자들로 하여금 무엇을 어떻게, 또 어디에 뿌리를 두고 전해야 하는지를 일찍 강조해서 적시해 놓았다고 말할 수가 있다. 그 한 마디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딤전1: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이 한 마디가 바로 바울이 말하는 ‘믿을 만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오직 한 마디이다!’ 크리스천들의 삶의 근원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행동강령이 바로 그 말씀이라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하시려 세상에 오셨다.’는 이 한 마디가 우리 개개인의 보화가 되려면,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란 신분을 고백해야 한다. 어느 개인이든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한 ‘믿을 만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한 마디’조차 아무 소용이 없다. 이 한 마디의 고백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어지러운 요즈음의 난국이든, 모든 사람들이 노벨 평화상을 받을 만큼 평화가 넘쳐나는 세상이든 진지하게 눈물을 쏟을 만큼 진솔한 고백이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야!’라는 단순하고 의례적인 고백이 아니다. 바울은 자신이 죄인임을 강조하려고,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라고 고백했다. 의례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 바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홀로 서서 진솔하게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주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걸 받아들인 환영사이기도 하다.
그렇다. 누구나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상대적이라서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라는 고백은 누구의 입에서든 쉽게 나올 수가 없다. 그런 고백으로 세상에서 이득을 볼 기회는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사순절 기간이면서 더럽고 추한 코로나바이러스의 침입으로 어지러워진 세상에서 오늘, 당장 고백할 한 마디 말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라는 것이다.
첫 낙원 에덴에 코로나바이러스의 침입은 없었지만, 모든 인류를 죽음에 빠뜨린 사탄은 무임승차하듯 그곳을 침입해 첫 사람 부부를 망가뜨렸다. 첫 부부는 코로나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은 사람들의 숫자처럼 헤아릴 수 있는 한계가 있는 숫자가 아니다. 바로 인류 전체, 자자손손이 공격을 받았다. 바로 너와 나이다. 지금 당장 코로나바이러스와는 무관하더라도 죽음의 죄가 우리 모두를 덮쳤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을 구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그분 앞에서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분의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 제한적으로 육신을 죽이는 코로나바이러스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코로나바이러스 이전에 이미 죄의 침입으로 망가진 죄인임을 고백해야만 우리 주님의 구원이 너와 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