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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260): 하나님께서 거하실 우리의 마음의 집
시카고의 건축물들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기에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 찾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무튼 이런저런 여러 종류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것을 보면, 너무 아름답고 부러워서 아무리 높은 빌딩이라도 고개를 치켜들고 한 참을 바라보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단순한 가정집이라도 단지 손으로 뚝딱 짓는 것이 아니라, 실제론 마음에서 집짓기가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이 말의 뜻을 먼저 곱씹어보았으면 좋겠다.
혹시 마음의 집이라면 한국에서 사시사철 결코 그 열기가 끊이지 않는 나름대로 좋다는 고급 아파트들이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물론 그런 사람들은 마음의 집이란 말보다는 결코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한 번도 잊힌 적이 없는 달콤한 꿈의 집이라고 말해야 더더욱 실감이 날는지 모른다. 그들은 먼저 좋은 학군에 속한 좋은 지역과 일상이 편리하도록 모든 것들이 곁에 골고루 갖춰져 있는 환경이 좋아야 하지만, 나름대로 커다란 평수의 넓은 집이 자신의 가정의 식구와는 상관없이 나중에 되팔면 많은 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그런 집, 한 탕으로 부자대열에 오를 수 있는 그런 집이 그들의 마음의 집이고, 꿈의 궁전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사람들에게만 이런저런 마음의 집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음의 집이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무어라고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선 영(靈)이신 하나님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처럼 거하실 집이 따로 있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속성을 말할 적에 ‘아니 계신 곳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분의 속성이 무소부재하시니 그분의 집이 어디 있는지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 하나님의 영이 계실 곳은 결국 자신의 형상을 닮은 너와 나 속에 계실 수 있지 않은가? 물론 너와 나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동거할 수 있을 만큼 정결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 어찌하겠는가?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함을 계속 강조했다. 주님께선 육신을 옷 입고 사람들과 함께 지상에 계실 때에도 결국 사람들 속에 거하길 바라셨고,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길 바라셨다. 결국 그리스도의 영과 우리 각자의 영이 서로 거부감 없이 하나가 되는 것이 주님과 우리의 마음의 집이다.
아마도 그래서일까?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집을 짓고 성전봉헌기도를 드리면서 그들의 백성이 어디서든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집에 계시지 않고, 하늘에 계신다는 걸 계속해서 강조하려는 듯, ‘주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를 반복한 걸 볼 수 있다(대하6:12-42). 오늘의 우리가 기도할 때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던 주기도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기도한다. 어느 곳에든지 하나님의 집을 마련하고픈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사람이 지은 집을 향해서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그분께 기도하기를 주님께서 원하신다.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집은 땅이 아니라, ‘황금보석 꾸민 집’인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지역의 한계가 없는 하늘에 있다.
다윗이 그토록 하나님의 집을 짓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셨지만, 그가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다는 이유로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집을 짓도록 맡기신 걸 보게 된다. 하나님께선 이스라엘백성에게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자유를 주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하나님의 임재를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도록 어디를 가나 성막을 세워 그 백성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케 하셨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이나 계속해서 광야를 걷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시면서도 보다 확실하게 성막을 세워 그 백성들 속에 임재하심을 알도록 하셨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의 백성을 조성하시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시는 마음의 집이 지어지길 바라시는 영원한 계획의 일환으로 입안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돌이나 나무로 지은 집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으라는 모형이 곧 성막이요, 성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