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원목사와 함께 목회하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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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해야 합니다.

admin 2014.04.07 23:57 Views : 2478

우리들은 반응이란걸 하고 삽니다. 누가 숨었다가 나타나면 깜짝 놀라고, 옆 차가 밀고 들어오면 움찔합니다. 긴 겨울 끝에 찾아온 봄 꽃 앞에서 미소짓고, 뜨거운 커피 잔을 들고 눈감아보는 것, 다 반응입니다. 종류로는 감각적 반응, 생각이나 심리적반응, 그리고 행동이나 생활의 반응이 있을 것입니다. 시간으로는 순간이거나 단기적인 것, 그리고 장기적인 반응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는 이, 칼에는 칼이라는 세상 원리가 된 반응이 있는가 하면,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뺨도 대어주는 주님 말씀에 기반한 신앙적 반응도 있습니다.

 

[반응]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한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에 선교사님들이 자주 찾아옵니다. 선교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따라하기 어려운 헌신과 눈물겨운 고난이야기, 한영혼 한영혼을 구원하여 교회를 세우는 감격이야기, 먹고 살 것 조차 없을 때의 기도응답이야기 등에는 언제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뵈옵는 감동이 있습니다. 목자를 비롯한 우리 교우들의 다양한 간증도 그렇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일어선 이야기, 한 영혼 때문에 마음쏟은 사랑이야기, 아직도 힘들지만 십자가 붙잡고 사는 소망이야기 등을 들으면 역시 우리 마음들이 꿈틀거리며 반응합니다.

 

그런데, [감동반응]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며 어떻게 발전하는가 궁금한 것입니다. 여가활용과 오락을 위해 찾았다가, 뒤돌아서면 쉽게 잊는 싸구려영화의 감동 같은지, 아니면 명산유수풍경감동과 같이 제법 긴 여운이 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선교간증, 목자간증 등은 달라야 할 것입니다. 헌신과 결단을 위해 영화관을 찾는 분은 드물것이며, 주를 위한 사명 찾으러 관광가는 분은 극소수일 것입니다. 선교와 목자간증은 우리 마음의 헌신과 결단을 요구합니다. 간증자가 따로 결단을 촉구하지 않아도, 간증케하시는 분이 우리 마음을 두드리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좋은 이야기 들었다며, 마음 속 감동으로 끝난다면, 이것은 제대로된 반응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자기진동은 있으나 세상진동은 만들지 못합니다. 감동이 되어 식사라도 대접하며 위로하고, 혹은 자기 쓸것을 줄여 선교헌금이라도 드린다면 조금은 [행동반응]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단번의 반응으로 그치고맙니다.

 

선교사나 목자에 대한 반응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분들을 세우시고 그분들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 우리 주님에게 반응해야 제대로 된 반응입니다. 그래서 간증하시는 그 분은 [거기서] 저렇게 살고, 저렇게 수고하니, 나는 [여기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수고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생각과 결심]입니다. 그분들의 그곳헌신을 본받아, 나의 이곳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세월이 오래 흐른뒤, 간증 내용은 모두 잊을지라도, 일상화된 헌신과 수고가 그분들과 닮은 꼴이라면, 그리고 그런 헌신과 수고가 주님 때문이라면, 이것은 분명 제대로 된 [생활반응]이며 [헌신반응]일 것입니다. 올바른 반응(response)은 우리의 책임(responsibility)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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