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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231): 예루살렘과 종려주일(Palm Sunday)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는가?’ 소위 이런 말로 빈정대는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멸시를 받던, 예수께서 어린 시절과 목수일로 가정을 돌보셨던 고향 땅과 그곳 사람들, 가나안의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던 나사렛 동네! 그곳을 떠나 가버나움을 사역의 본거지로 삼고 복음을 전하신지 아마도 3년쯤, 시간이 흘렀을 때 주님께선 갈릴리 가버나움을 떠나 당시 종교의 도성 예루살렘을 향해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물론 십자가의 고난 후에 부활하시고,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자주신 게 그곳에서의 그분의 모습은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아무튼 주님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갈릴리를 떠나서 며칠을 걷고 또 걸어서 목적지 예루살렘 도착하셨을 터.
어쩌면 조선 시대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모두가 출세를 꿈꾸고 고향의 시골집을 떠나 한양 길을 택했던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과 주님의 여정도 비슷했을 거라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주님의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은 자신의 사역의 최종 목표를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때에 맞춰서 자진해서 택한 주님께서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며 뚜벅뚜벅 걸어가신 고난의 여정이었다.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셔야 할 고난의 길이 오늘의 우리를 위해서도 바로 오늘 종려주일에서 시작돼 부활로 이어진 것을 보게 된다. 주님께서 피곤한 몸을 이끄시고, 단 한 번의 왕권 행사인 양 겨우 나귀 새끼를 얻어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백성들이 길가로 몰려나와 ‘호산나’ 찬양의 큰 목소리로 환영해주던 사실을 기념하는 날이 오늘 바로 종려주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속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선 그들의 과분한 환영사가 오히려 주님께서 이루시려는 위대한 목적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라는 사실도 아셨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같은 시대에 그곳에 있었다면, 우리가 외쳤을 것 같은 호산나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주님의 비유 속에서 한 달란트를 받았던 자의 초라함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쩌면 우리 손엔 종려나무의 부러진 가지 하나도 손에 쥐지 못한 채 많은 사람들로부터 등 떠밀려져 억지로 나왔다가 실망한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가 바로 길가 집 모퉁이 어디엔가 숨어서 괴로움만 되씹고 있던 그들과 같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인지 모른다. 만약 사람들이 외치는 호산나란 찬양이 과연 주님의 죽으심이 곧 주님의 승리요, 구원 받은 모든 자의 승리라는 의미로 바로 알고 길가에 나와서 외친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예루살렘을 손안에 넣어 새로운 왕권을 쥐고 이스라엘을 지배하려 오신 그들의 왕으로서의 승리를 바라는 비뚤어진 마음의 호산나는 아니었을까?
우리 주님의 일거수일투족이 움직일 때마다 그분에서 주어질 우리 자신이 받을 혜택에 관심을 두면, 주님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으로 우리를 죄로부터 살리시기 위한 순수하고 희생적인 사랑이라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을 수도 있다. 우리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 그 고난의 발걸음의 의미를 잊어버릴 땐 결국 엉뚱한 것들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으시며 베푸신 사랑은 단순히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한 번 스쳐가는 절차상 한 순간의 몸짓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영원히 구원하신다는 약속의 실현이었기에 종려주일 그날에 예루살렘에 모인 군중 속에 없었던 오늘의 우리들조차 오늘뿐만 아니라, 영원히 그 사랑을 받아들여서 감사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사랑은 때론 억지이거나 마지못해 나오는 의무감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는 주님께선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가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요10:18).’
주님의 사랑이 자발적이란 고백이었고, 아버지의 사랑의 명령에 죽음으로 순종해 ‘다 이루셨다!’는 선언이었다. 자신의 죽음이 곧 사랑이라는 걸 아버지를 증인으로 내세워 보장하신 것. 때문에 예루살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사랑의 선물로 제공한 중요한 장소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