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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16): 모세의 죽음이 보여준 은혜의 복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느보 산으로 올라가게 하시고, 그 산에서 모세의 생명을 거둬 가셨다. 그것도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게 하신 후 모세의 생명을 거두셨으니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로서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의 죽음이 비극이라 단정할 수도 있고, 더구나 그가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마치 천국에서 배제된 것처럼 가슴 아픈 일일 수도 있지만, 그의 죽음이 주는 의미는 단순히 비극으로만 자리매김 할 일이 결코 아니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과 관련된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일지. 이것이 진정 궁금하다.
그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가 가데스 므리바에서 바위에서 물을 내서 백성들을 먹이되 그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해야 했지만, 마치 그 자신의 능력으로 백성들에게 물을 내준 것처럼 행동했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 산에 올라 죽게 되었고, 또한 오직 모세만이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계명을 전했지만, 그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율법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그 땅에서 태어나시고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은혜의 복음이 하나님께서 친히 불러내신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까지도 혜택을 입고 구원을 받을 은혜를 위해서 율법의 모형인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 산에서 죽어야 했던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백성에게 허락하신 율법이었기에 모세의 죽음이 보여준 하나님의 뜻은 율법을 받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이방인 우리에겐 가나안 땅에서 태어나셔서 그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사실을 모세의 죽음이 미리 보여준 은혜로 생각된다는 말이다. 모세의 죽음은 바로 율법이 없는 불법의 사람들인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준 은혜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느보 산에서 죽었던 모세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던 엘리야와 더불어 변화 산에 나타나 주님과 더불어 한 자리에 있었던 황홀한 사건 가운데서 하늘의 하나님의 음성은 그들 두 선지자에게 맞춰진 것이 아니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지적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소개하시며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곧 ‘그의 말을 들어라.’고 일러주셨다. 하나님의 율법을 직접 받았던 모세조차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는 것이 영광이라면, 율법을 알든 모르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난다면, 그것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진리를 우리 모두에게 보여준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선 그 율법을 직접 받았던 모세조차 예외 없이 죽었고, 또 그 율법의 백성들일지라도 예외 없이 모두 죽게 돼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가 살아서 영광스럽게 변화 산에 나타나 주님과 동석한 모세의 모습은 그의 죽음조차 은혜였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신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느보 산에 올라가 죽게 하셨지만, 그의 죽음은 한 사람의 생명이 단순히 땅위에서 끝난 사건이 아니었다. 기력이 정정했던 그의 죽음엔 특별히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셨다. 모세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무언가를 해결하려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를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고, 그것으로 말씀하시고 싶으신 뜻이 있으셨다는 말이다. 모세의 죽음은 그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위한 죽음, 곧 하나님께서 펼치실 메시지의 필요를 위한 죽음이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놓으신 그 사건이 바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유일한 복음이었던 것과 같기 때문이다. 수많은 죽음의 심판 역시 죽음이나 멸망 자체가 아니라, 다시 살리시는 구원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