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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22): 나그네와 순종

김우영 2019.09.17 13:45 Views : 70

짧은 글(122): 나그네와 순종


나그네와 관련된 앞의 두 편의 내 글을 읽은 사람일지라도 아마 위의 글 제목, ‘나그네와 순종이란 제목 자체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본향도 없이 아니 본향에서 쫓겨나서 마치 실 떨어진 연처럼 방향도 정처도 없이 두둥실 떠다니는 존재라면 어느 무엇, 혹은 누구에게도 붙들려 있지 않으니 일단 그런 삶을 일컬어 김 삿갓을 연상하며 자유로운 나그네가 먼저 떠오를 터인데 순종이란 말이 전혀 뜬금없는 말로 들릴 것이고, 나그네가 어떻게 또 누구에게 순종하란 말인가, 이렇게 영문을 알 수 없어서도 고개를 저을 듯싶다


물론 순종이란 말 자체가 순종해야 할 어떤 존재에 붙잡혀 있는 부자유한 신분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그네라면 일단 순종의 대상과는 거리가 먼 아무데도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은 자유로운 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지 싶다. 그런데 나그네에게 순종을 요구한다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나그네의 최대의 장점은 갈 길의 방향도 자유롭고, 자신을 강제하는 자가 없는 것이 자유의 핵심인 것 같은데 순종이 나그네의 덕목이라면 나그네가 모든 것들에 붙잡혀 자유를 상실한 자의 표본처럼 생각돼 더더욱 곤혹스러워 할 것 같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신분을 나그네라 지칭하신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생각하는 나그네의 신분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다른 것들을 붙잡지 말고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붙들고 오직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라고 주신 신분이 바로 나그네란 뜻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살아가려면 철저히 세상에선 다른 것들과는 결별하고 나그네의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깊은 뜻이란 말이다. 하나님께만 붙들리기 위한 특별한 신분, 곧 구원을 받을 자의 신분이 나그네이다


에덴에서 아담부부의 불순종을 들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에덴의 동편으로 쫓아내신 것 자체가 나그네의 삶의 요구이지만, 그것이 단지 형벌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순종의 삶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는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단순히 에덴에서 그들을 내치신 걸로 끝난 형벌이 아니었기에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를 누구도 더 이상 침범치 못하도록 엄히 방어벽을 치신 건 생명나무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계속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하나님께만 순종하며 살아가는 나그네들이 들어가 살아야 할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요, 생명나무를 지키고 있는 에덴의 모습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민족 만들기를 거듭 약속하시고, 그 약속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셨지만, 그들로 하여금 마치 나그네의 표본처럼 살게 하시면서 그들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셔서 홍해를 기적으로 건너게 하시고,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모세를 불러올려서 오직 그 백성에게만 해당되는 율법을 주신 것은, 어쩌면 나그네와 법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조합을 이루어 그들을 하나님의 곁에 두고 싶어 하셨던 진정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진정 그런 하나님이 쉽게 이해가 되는가? 오직 하나님 한 분께 속해 있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오직 그들에게만 모세를 통해서 호렙 산에서 하나의 율법을 그 백성에게 내리신 하나님, 오직 그들만이 오직 한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가나안 땅에 오직 하나의 성전만을 허락하시고, 오직 그 한 곳에서만 하나님께 번제와 희생제와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도록 명령하신 한 분 하나님. 이 모든 것들이 한 분 하나님께 초점이 맞춰져 있고, 또한 이스라엘백성에게 하나님 한 분의 이름을 높이고, 그분의 영광에 초점을 맞춰서 하나님 한 분만을 순종토록 명하신 한 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그네의 삶을 명하셨다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먼저 그 땅을 차지하고 살던 일곱 종족들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나그네로 살아가가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땅에 구원자로 오시기까지 그 땅에 이미 자리 잡고 살던 이방인들 속에서 나그네로 살되 오직 하나님만을 순종하고 살도록 명령 받은 나그네들이다

베드로는 이런 나그네를 일컬어 택함 받은 자, 곧 구원 받은 자라고 말하며 그들은 성령을 통해서 거룩하게 된 순종의 나그네라고 말하며 그 신분을 귀하게 여긴 걸 볼 수가 있다(벧전1:1). 자신이 자신에게 순종하며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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