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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21): 하나님의 창조질서에서 본 남녀관계 (2)
최초로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깨뜨린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어떻게 계속해서 바른 방향으로 이어져 갈 수 있는 것일까? 비뚤어진 창조질서를 바르게 고쳐놓는 것이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담당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과업이다. 하나님께선 과연 어떤 방법으로 깨진 질서를 바르게 고쳐 세우실 수가 있으실까?
하나님께서 에덴에 나타나셔서 첫 번째로 그 여자에게 불순종의 책임을 물으셨을 때, 그 여인은 자신을 유혹한 뱀을 핑계해 자신의 잘못을 뱀에게 전가했고, 남자 아담은 하나님께서 하와를 지으셔서 자신에게 안겨주신 하나님과 그 여인을 싸잡아 원망하고 핑계했다. 하나님께선 뱀에겐 일언반구 이유를 묻지 않으시고, 곧바로 그를 저주하셨지만, ‘하나님의 형상과 그 모양대로’ 지음 받은 인격체인 남자와 여자에겐 그들 각자의 책임을 물으셨을 때, 그들 각자는 선악 간에 핑계할 수 없는 신분임을 망각하고 핑계해 각자의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그렇다. 하나님의 형상과 그 모양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깨뜨려진 비극을 볼 수 있다. 아담은 남자로서 먼저 지음 받은 자였고, 여자는 남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남자 뒤에 지으셨으니 그들의 선후관계는 너무나도 분명했다. 선후관계에서 남보다 앞선 자는 자신의 뒤에 있는 자에게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다.
한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는 사랑과 순종의 관계로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다. 사랑과 순종은 한 생명체 안에서 두 가지로 분리된 서로 다른 기능이 아니라, 결국 사랑이란 하나의 기능으로 통합되는 걸 보게 된다. 남자는 주체로서 객체를 사랑하지만, 객체는 순종으로 자신보다 앞선 주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순종은 결국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랑의 또 다른 기능이면서 사랑을 사랑 되게 하는 사랑의 기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남자의 사랑에 여자의 순종이 결국 열매를 맺게 된다.
순종은 사랑보다 낮거나 약한 하위 개념이 아니다. 사랑에 열매를 맺게 하는 기능이 순종이라면 순종이 없으면 사랑이 꽃피울 발판을 잃게 돼 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사랑과 순종으로 묶어두신 생명체와 같은 모습임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지으시면서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게 하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사랑과 순종의 관계를 하나로 묶어서 무언가를 이루게끔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렇다. 생명관계인 부부 사이엔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남녀가 ‘하나님의 형상과 그 모양대로’, 곧 하나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지킴이가 되어야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남녀의 선후관계에서 남자의 선(先)의 위치란 지위가 높다는 의미가 아니라, 책임을 지고 결정권을 행사해야 할 책임자라는 뜻이다. 여자의 후(後)의 위치는 선(先)인 남자의 결정에 따르는 순종을 의미한다. 남녀의 선후관계는 남녀의 능력에 한계나 혹은 차이가 있어서 엮어놓은 관계가 아니다. 남녀의 삶 혹은 부부의 삶과 가정의 삶은 매사에 결정을 요구하는 의론 하에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여자의 의견이 좋을 경우 남자가 여자의 좋은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면, 그것이 곧 사랑이고, 여자는 그 사랑에 순종으로 화답해야 한다는 뜻이다. 매사에 순종만큼 크고 강한 힘이 그 어디에도 없다. 여자의 순종이 없다면, 남자의 사랑과 결정권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약 남녀의 선후관계가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아니라, 우연한 진화의 산물이라면, 질서 세우기 자체가 시간 속에서 언제라도 변할 수밖에 없는 가치관이나 도덕률에 불과하다. 사람들의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인간이 만든 가치관이나 도덕률에 맞추려 하다가 남녀 구별 없는 부부 아닌 부부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소돔과 고모라의 비극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벗어나는 것이 곧 죽음인데,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 창조질서가 파괴된 죽음 가운데서 얼마 동안 살아가고 있는 불안전한 형국에 처해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