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게시판
HOME > 나눔터 > 나눔 게시판
짧은 글(209): 기쁨과 슬픔
어떻게든 기쁨을 찾아 행복을 누리려는 인간의 노력만큼 끈질긴 것도 없지만, 인간이 누리려는 기쁨의 요소가 헤아릴 수 없이 많기에 각자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기쁨을 찾아 오래오래 누리기가 오히려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기에 사람에 따라선 최선이 아니라, 차선책이라도 찾아 거기에 걸맞은 기쁨을 누리려고 할 때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 기쁨이 어찌 온전할 수가 있겠는가? 어쩌면 누구라도 열심히 나름대로의 기쁨을 추구하지만, 방해하는 요소가 다양하고 그만큼 많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기쁨을 방해하는 요소가 쉽게 제거되지도 않거니와 설령 제거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자신이 바라는 기쁨으로 만족을 가져다줄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진정 ‘내일 일을 난 몰라요’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이 좋다고 생각했던 그런 기쁨이 더 큰 슬픔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한다. 아니, 기쁨이 반드시 슬픔을 가져온다는 뜻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은 동전의 양면과 같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어야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맞는 사람인 것과 동일하고, 밤과 낮이 하나 되어 하루라는 시간이 된 것과도 같기 때문에 기쁨과 슬픔이 분리가 애당초 쉽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어쩌다 기쁨이 표면에 올라왔지만, 슬픔이 바로 뒷자리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언제 슬픔이 수면으로 올라와 지금의 기쁨을 밀어낼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완전한 기쁨도 완전한 슬픔도 없다고, 마치 제법 중요한 격언처럼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질서 가운데 남자를 지으시고 좋다고 만족해 하셨지만, 그 남자를 돕는 자가 그 옆에 없는 상황을 지적하시고, ‘좋지 않다.’고 밝히신 후에 남자를 잠재워 그의 갈비뼈를 적출해서 여자를 지으셔서 남자와 여자를 합하여 사람이라 명하셨다. 어쩌면 기쁨과 슬픔도 마치 남자와 여자처럼 합해져서 온전한 하나가 되게 한다는 가능성을 가리킨 것은 아닐까? 기쁨만 있을 땐 기쁨이 무엇인지, 슬픔만 있을 땐 슬픔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기쁨이 혼자만의 것일 수 없고, 슬픔이 혼자만의 것일 수 없다. 누구와 무엇과 하나 되어야만 기쁨이 찾아오고, 슬픔도 그렇게 찾아온다. 기쁨과 슬픔이 각각 독불장군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기쁨은 모든 슬픔을 모두 떨쳐버리고 독립해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기쁨은 반드시 슬픔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숙명을 지녔다. 누구도 혼자 기쁨만을 누리며, 기쁨에 취해서 살아갈 수 없다. 결국 행복은 단순히 기쁨으로 뭉쳐진 기쁨의 덩어리가 아니라, 슬픔이 그의 옆에 있을 때 기쁨이 되면서 자신이 행복하다는 걸 깨닫게 되니 기쁨과 슬픔은 항상 한 동아리이다.
하나님께서도 역시 혼자 계시면 기뻐하실 수가 없다. 만약 누가 혼자서 기쁨에 겨워 슬슬 웃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를 실성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기에 하나님께선 혼자 계신다면 기뻐하실 수도, 웃을 수도 없으시다는 걸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바로 관계의 형성이라는 걸 알면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도 삼위가 일체가 되어 한 분으로 살아가시는 것, 그 존재 자체가 기쁨이요, 행복이기에 세분이 한 분처럼 시작하신 창조사역과 모든 창조질서가 한 분 하나님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더구나 피조물이 없는 깊은 흑암만으로는(창1:2) 하나님의 기쁨이 어디에도 미칠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구원 계획도 결국 하나님의 기쁨을 회복시키시려는 것이었음을 안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그분과 단절된 것이 기쁨을 잃고 불행해진 근본 원인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가 있다. 아무리 울고 슬퍼도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고, 동시에 우리 모두의 기쁨이다. 애당초 어둠과 슬픔이 없었다면, 우리는 빛의 기쁨과 생명력을 알 수 없었을 것이고, 동시에 기쁨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오직 기쁨만을 누리며 웃고 살아가는 사람도 없고, 오직 슬픔만을 안고 울면서 살아가는 자도 없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더불어 살아가야 할 생명 공동체임을 어찌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