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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존재 이유 4
바울의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랑 이야기 <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8).’ 사도 요한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극적으로, 수학적으론 가장 간단하게, 그러나 가장 깊게 강하게 표현한 예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 어떤 형용사를 붙여 최상급으로 격상시킨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축소하는 빌미를 제공할 뿐,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하심을 표현하는 데는 심히 부족함을 드려낼 뿐만 아니라, 엉뚱한 곳으로 사랑이 흘러 들어가 사람도 세상도 부패시킨 역사를 보게 된다. 사실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말을 곁들여 강조하는 것이 결국 하나님의 사랑의 원형을 깨뜨리게 된다는 사실을 우선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어머니 날에 흔히 감격해 부르는 어머니 사랑의 강조가 무엇인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높다.’고 노래하지 않는가? 결국 그런 표현이 사랑의 강조가 아니라, 사랑의 제한이란 걸 안다면, 하나님의 사랑의 또 다른 강조의 표현 역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제한이나 사람들의 흔한 사랑과 상대적인 위치로 끌어내리는 행위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의 편지를 특별히 ‘사랑장’으로 받아들일만큼 귀중한 편지쓰기를 통해 사랑을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쓴 사랑의 정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3장이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할만큼 ‘하나님=사랑’이란 사도 요한의 표현이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다면, 사랑의 요구가 아니라,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을 알고 받아들여 한다.
바울이 그린도교회에 사랑의 편지를 쓴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고린도엔 타락한 사랑이 너무 넘쳐나 우상숭배가 만연돼 있기에 사랑에 관한 바른 이해를 위해 바른 교육이 필요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해양 도시 고린도 중앙엔 아풀로 신전이 버티고 있었고, 고린도를 지배했던 로마 역시 희랍 아덴 신전에 그들이 섬기는 신들이 너무나 많아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을 보았다.’ 바울이 천명한 걸 볼 수 있다. 로마제국의 영향 아래 놓이면, 고린도든 아덴이든 어디든 우상의 도시로 변묘시킨 현장을 보게 된다.
우상의 도시란 다른 표현으로 타락한 사랑의 도시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이스라엘 역시 사랑으로 타락한 시대가 있었기에 하나님께선 그 사실을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시려고 호세아선지를 부르셔서 그로 하여금 창녀와 결혼해서 음란한 자녀를 낳도록 하신 역사적 사건에서도 충분히 깨달을 수가 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창녀촌에 비교할 수 있을만큼 부패하고 타락한 사랑의 나라요, 그 민족이었다.
사랑의 원천은 그 어떤 무엇이 아니라, 오직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 이런저런 고린도나 희랍의 현실과 역사적 배경을 보면, 이방의 사도로 파송 받은 바울이 부패한 사랑으로 물든 고린도에 복음으로 세워진 고린도 교회에 정상적인 사랑의 편지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았겠나 싶다. 우리는 사랑이란 단어만 들어도 흥분해서 어찌 할 바를 몰라 가슴도 얼굴도 붉어진 경험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전쟁과 평화도 들어 본 말이고, 전쟁과 사랑도 우리 귀에 익숙한 말이다. 길을 걷다가 길가에 핀 하찮은 꽃에 마음을 빼앗길 때도 있고, 누구에게든, 그 무엇에든 첫 사랑의 추억이 있질 않은가? 누구로부터인가 받은 사랑의 편지도 한 묶음씩 보관하고 있기도 하겠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고전 13장을 펼쳐 다시 깊이 있게 읽어 보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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