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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상 이야기 4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가죽옷을 입은 광야의 첫 사람 부부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로 가시와 엉겅퀴로 뒤덮인 세상을 살아가야 할 첫 사람인 아담의 가정은 에덴과는 전혀 다른 세상, 진정 팍팍해질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을 아시고, 하나님의 긍휼로 에덴에서 마지막 은혜로 베푸신 가죽옷의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창3:21)? 더구나 하나님께서 아담 부부를 에덴의 동편으로 쫓아내신 것은 하나님과의 영적 단절로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에덴의 동편으로 내보셨다(창3:22). 여기서 무드셀라가 969세의 수명을, 아담이 930세를 살았다는 장수의 기록이 결코 은혜로 누린 축복만은 아니었음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창5:5).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난 에덴의 동편에서의 너무 오래 장수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담의 가정은 가시 밭이나 땅의 엉겅퀴가 문제가 아니라, 그의 집안에서 벌어진 형제간의 갈등이 큰 문제였다. 아담의 집에 두 아들이 태어났는데, 첫 아들은 가인, 둘째가 아벨, 농사꾼 가인이 양치기 동생 아벨을 자기 밭으로 불러내 이유없이 죽여버린 살인 사건이다.
사실 두 형제 사이에 나타난 문제의 갈등은 신앙과 종교생활의 차이가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가인은 농사에서 얻은 곡식으로, 아벨을 자기가 치던 양의 새끼를 하나니님께 제물로 드렸다. 사실 겉으로는 제물의 차이에서 살인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인의 제사가 마음에 없던 뒤틀린 종교적 행위였다면, 아벨은 속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신앙적 제사와의 차이에서 벌어진 것일 수 있다. 가인은 부모가 은혜로 가죽옷을 입고 일하는 것을 보면서도 실제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했던 것 같고, 대신 아벨은 부모가 입고 있던 가죽옷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믿음으로 살다가 자기 양들 중에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기에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신 것이 아닐까?
가인의 제사가 아벨처럼 개인의 신앙에서 나왔더라면, 동생을 죽이는 만행보다는 하나님께 그 이유를 묻고 다음 번에 자신의 제물을 바꾸든, 혹은 믿음의 제사를 드렸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죄없는 동생을 자기 밭으로 불러내 죽인 것은 그는 전형적인 종교인의 행태로 보인다. 십자군의 악랄한 죄악들도 결국 신앙이 아니라, 종교인들의 만행이었다는 게 사실로 확인되었다. 개인의 신앙의 잘못은 회개로 돌아설 수 있지만, 개인의 종교성에서 나온 선악간의 지식적 판단은 살인이란 죄악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수가 있다. 가인이 결국 자기 나름대로 판단해 자기 동생마저도 거리낌없이 죽인 건 그의 종교성이란 말이다. 오늘의 교회 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닐까? 가인은 자신의 제물은 좋고 선한 것, 아벨의 제물은 좋지 않다고 판단한 나머지, 하나님의 반응이 자기 생각과는 전혀 다르니까, 동생을 불러내 죽인 것이 아닐까? 선악을 나누는 지식적 판단이 아벨을 죽인 것이라면, 우리의 선악의 판단을 금하신 하나님의 조치가 진정 영원히 선한 조치로 받아들여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만의 선악의 지식 판단을 인간 개개인이 마음대로 사용하면, 형제조차 죽일 수 있는 죄악임을 가인이 보여주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아벨이 바친 제물을 선하게 여기고, 받아주신 것을 감히 잘못된 악으로 판단하고, 동생을 불러내 죽인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의 부모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은혜의 가죽옷을 입고 살았지만, 그들이 입은 가죽옷이 그들의 마음까지 안전하게 덮어주진 못했던 것 같다. 선악의 분별 지식은 결코 인간의 지식이 되어선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어쩌면 인간이 매순간 저지르는 살인 행위 역시 인간 각자가 지닌 선악 판단의 지식적 잣대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것이 무서운 지식임을 잊어선 안된다. 우리속의 미움도 선악의 판단에서 나오고, 더 큰 살인도 선악의 지식에서 연유한다는 사실을 어찌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에덴에서 내려진 하나님의 금단의 열매 따먹기, 선악 판단으로 범하는 죄악을 진정 멀리하고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다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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